◎“사람의 일 되새기고 말에 삶을 근접시키는 그것이 문학이라고…”/“부실해져가던 내게 매운 사랑을 보내준 모든 분들께 감사”제31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혜경(38)씨가 1일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소감을 싣는다. 7월부터 2년 예정으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자원봉사단에 지원,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가자마다대학교에서 한국어강사로 일해온 이씨는 지난달 29일 일시 귀국했다. 이씨는 수상소감을 통해 이 시대 문학은 「무엇이 한 영혼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을 방해하는지 그 실체를 밝혀내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낯선 언어로 혼자 말하기 시작하는 저를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지켜볼 무렵,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거리감 때문인지, 또 다시 글쓰기가 내 게으른 나날을 보다 못해 나를 경계시키는구나…그렇게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된통 앓았습니다. 아마도 제 등줄기를 후려친 죽비를 감당하기에 제가 어느 결에 너무 부실해졌나 봅니다. 매운 사랑 보여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국일보사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이들의 글이 없었더라면 제 글 또한 생겨나지 않았을, 선후배와 동료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글을 쓰려 하는 게 쓸데없이 생목숨인 나무나 죽여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겁만 무성하고 목젖은 지질릴 때, 사는 일과 글 쓰는 일의 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질 때면 도서관에 가서 서가에 꽂힌 책들 사이를 거닐곤 했습니다. 발등이 소복이 부어오를 무렵이면 그 책 속의 구절들이 저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겁먹지 말라고, 문학은 그저 사람의 일을 되새기는 일이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말에 자신의 삶을 근접시키는 일이라고, 달리 살아갈 대안이 없으니, 그저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리라고요. 그렇게 돌아나오는 저녁이면, 산 아래 마을의 가물거리는 불빛, 그 불빛 아래 가물가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럴 수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소중한 기억이 저에 의해 훼손당할 것을 무릅쓰고, 살아온 날의 아프고 기쁜 기억들을 떼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상작품을 쓰게 한 친구며 다른 이들의 의연하게 삶을 감내하는 모습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요.
작가는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언제부턴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수가 죽음으로써 이 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묵은 무덤 속에서 넋조차 풍화된다 할지라도, 그가 죽음을 눈 앞에 두었을 때 느꼈을 고통을 잊지 않는 사람, 산뜻한 신도시를 보면서 그 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그 땅에서 누추하게 살아가던 목숨들의 일상에 축적된 자잘한 기쁨이며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요.
허락된다면, 감히, 기억하는 사람, 그 기억을 대신 앓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 삶에 내던져져 끊임없이 생채기를 만들며 흘러가는 사람들, 그 아픔 어루만질 겨를도 없이 다만 떠밀려가는 사람들, 그 이들의 속울음을 받아 안고 오래오래 앓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무엇이 한 영혼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을 방해하는지, 감히 그것의 실체를 밝혀낼 수 없다 할지라도, 그를 밝히는 불빛에 삭정이 한 가지만한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시간이 짧아지면서, 제 기도도 간절해졌습니다. 저를 내신 뜻에 합당하게 저를 남김없이 쓰고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러기 위해, 제게 닥쳐오는 모든 일을 온전히 감당할 힘을 주시라는 것, 이 상도, 다만 그렇게 제게 닥쳐온 일 중의 하나로 감당하려 합니다.
「말이 그친 자리에서 문학이 시작된다」 는 구절이 언제부턴가 메모장 곳곳에 적혀 있는 걸 보니, 날로 말이 느나 봅니다. 이제, 말을 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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