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이 입금된 통장…/갈수록 고가·다양화하는 경품들/꽁꽁언 소비 풀 고육책이라지만 부푸는 사행심·부익부 빈익빈 경쟁/확산되는 가격불신 등 ‘소탐대실’ 우려소리도 높아경품이 넘쳐나고 있다. 무엇을 보든, 어디를 가든 경품정보나 행사와 만나게 된다. 신문광고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에서, 심지어 구멍가게의 음료수 병뚜껑에서 까지도 경품행사와 마주치게 된다. 일상생활이 「경품의 바다」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사회분위기가 암울하다 해도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당첨 확률 수십만분의 1인 경품행사에 「생활」을 송두리째 바치는 소비자가 생겨날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상 경품열기에 불을 댕긴 주범은 백화점과 건설, 자동차업계. 이들은 아파트, 자동차, 금강산 관광 등을 경품으로 내걸어 소비자의 사행심리를 부추기면서 경품의 고액화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롯데 신세계 그랜드백화점이 각각 29,22,28평형 아파트(분양가 1억원 안팎)를 경품으로 내걸었고 현대백화점은 지난 2∼8일 전국 9개점에서 총 52대 아토스승용차를 경품으로 내놓았다. 아토스 52대면 총액이 3억원대에 이른다. 경품경쟁이 치열해지자 급기야 뉴코아백화점은 현금 500만원까지 내걸었다.
경품경쟁은 이제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자동차는 박세리선수가 내년 시즌 첫 미국 LPGA 공식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1,800㏄급 SM5 승용차 100대를 경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산업개발은 경기 광주군 탄벌리에 짓고있는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아반떼승용차와 냉장고, CD플레이어, 개인휴대통신(PCS) 등을 경품으로 내놓았다. 레이디가구도 최근 경품으로 10만∼1,000만원의 혼수자금을 주는 행사를 가졌다. 전국이 경품신드롬을 앓기에 충분하다.
학원등록비 30만원, 급여 30만원짜리 아르바이트, 장학금 100만원, 500만원의 가계보조금, 500만원이 든 예금통장 등도 최근 등장한 경품 품목들이다.
경품이 고가화, 다양화하면서 경품에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리는 경품족(族)들도 생겨났다. 아예 신청서를 수백장씩 구해 응모하는 「꾼」들이 있는가 하면 3,4명씩 짝을 지어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경품순회단도 적지 않다. 「사은품 킬러」들은 강추위에도 아랑곳 않은채 길거리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선착순 사은품을 받아가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인터넷 경품정보사이트 부터 뒤지고 일과를 시작한다는 H씨(31·회사원)는 『꾸준히 응모하다보면 언젠가는 대어를 낚게될 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경품행사는 불황기에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한 업계의 고육지책이다. 거액이 들어가는 극약처방을 써서라도 기필코 고객의 주머니를 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불황의 골이 워낙 깊어서인지 경품유혹조차 소비심리를 촉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경품행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첨되면 횡재요, 탈락하더라도 손해볼게 없는 「플러스 섬」 게임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경품행사가 사행심을 조장하고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경품에 탈락하는 더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허탈감도 클 수 밖에 없다. 당첨 확률이 거의 없는 경품에 대한 요행심리 때문에 신용카드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도 적지않다.
더 큰 문제는 가격에 대한 신뢰감의 상실이다. 아파트나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거는 것은 그 정도로 평상시 상품가격에 거품이 많다는 반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가격에 대한 불신감은 구매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특히 『고액 경품행사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상품의 가격인상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없는 것이다.
대형 백화점이나 자동차업계 등은 고액경품을 내걸 여력이 있으나 경품을 내놓을 처지가 못되는 중소기업체들은 고객을 빼앗기는 바람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생기고 있다.
그러나 경품규제는 지난해부터 대폭 완화돼 구매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경품행사의 경우 경품 금액에 대한 제한이 없는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사장들에게 고가 경품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을뿐 법적 제제수단을 가지지 않고 있다.
자금난과 판매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체들은 『고액 경품은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 공정한 경쟁질서를 허물어 뜨리는 행위』라며 당국에 규제를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심리를 살리려면 사행심을 조장하는 거액 경품경쟁보다는 차라리 그만큼 값을 깎아주는 합리적인 가격정책이 좀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경품정보 신문·응모대행사까지 등장/급성장 경품비즈니스… PC통신·인터넷이 주무대
일상생활에 경품이 홍수를 이루면서 경품 응모대행업 등 신종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다. 또 PC통신과 인터넷 상에는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 인터넷이나 잡지로 경품행사 정보를 알려주는 업체는 모두 10여곳. 이들은 어느 백화점에서 무슨 상품을 내걸고 경품행사를 여는지, 퀴즈 내용은 무엇인지 등 경품행사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각종 경품대회 현상공모 무료행사 내용만을 총정리한 국내 최초의 경품정보신문 「현상공모 투데이」까지 최근 창간됐다. 편지공모,각종 글짓기 미술 사진 공모전, 각 기업에서 실시하는 경품퀴즈가 소개된다. 현상퀴즈의 힌트까지 기록돼 있다.
행운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망설이는 고객으로 부터 주문을 받아 경품응모를 대행해주는 우편응모서비스도 등장했다.
「와보세요」「케이디네트」「퀴즈박스」 등 업체는 고객으로 부터 일정한 액수의 돈을 입금받아 그 액수에 맞게 일정한 회수의 이벤트에 응모를 대행해주고 있다. 한달에 1만원 입금받으면 20∼40회, 2만원 정도 회비로는 50∼80회 정도의 이벤트에 응모해준다.
PC통신과 인터넷은 경품 천국이라 할 만큼 경품이 널려 있는곳. 경품 정보 사이트중 대표적인 곳은 「노다지」「봉스클럽」「애드플러스」 등. 이들 사이트는 퀴즈 이벤트 설문조사 표어공모 등 경품을 제공하는 정보를 날짜별로 수록해 놓고 있다. 경품사이트에는 공짜로 상품을 나눠주는 행사가 세세하게 소개되며 제품광고 속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내면 일정액의 돈을 주는 곳도 있다.쿠폰서비스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쿠폰사이트에 접속해서 필요한 쿠폰을 인쇄해두면 해당상품을 구입할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인터넷상에 알려진 쿠폰사이트는 6∼7개 가량인데 이중에서도 「쿠폰」과 「쿠폰서비스」가 대표적이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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