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의 첫배를 타고 갔다 동해항으로 돌아온 것이 지난 22일 일요일이었다. 오후에 서울로 오려는데 기차편은 표가 다 팔리고 야간열차밖에 좌석이 남은 것이 없다.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몇대의 만원버스를 떠나보낸 뒤 오후 4시10분발 버스를 가까스로 태워준다. 택시 기사 말이 주말이면 교통편뿐 아니라 인근 일대의 호텔이나 여관도 초만원이라고 한다.대관령을 줄지어 넘던 차들이 용평을 지나고 진부에 이르자 벌써 길을 꽉 메워버린다. 설악산에서 나오는 차들이 합류한 탓인가보다. 고속버스는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로 빠진다. 그 길도 빽빽하다. 어두워지니 자동차 미등의 빨간 행렬이 캄캄한 길에 장사진이다. 서울에 도착한 것이 자정께, 평시의 4시간반 거리가 8시간 걸렸다. 명절도 아니고 바캉스철도 아니고 매주 있는 주말인데도 이런 체증이다. 어찌 이 길뿐일까, 전국의 길바닥이 이럴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별천지다. 전날 밤 떠나온 북한의 금강산 일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금강산에서는 장전항에서 온정리로 가는 길이나 온정리에서 해금강으로 가는 길이나 북한 자동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별표 번호판을 단 귀빈용 벤츠차와 부녀자들을 가득 태운 트럭 한대를 본 것이 고작이다. 주민들은 모두 걸어다녔고 간혹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온정리쪽에서 장전까지 7㎞의 길에는 걸어서 통학하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 관광객 중에 누군가가 『우리 애들은 저렇게 걸어다니라면 학교에 안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강산에는 북한의 일반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때문에 피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평시라도 자동차도 흔치않고 숙박시설도 없는 이 곳에 많은 사람이 올 것 같지 않다. 금강산이 남쪽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해금강 근처의 삼일포에서 만난 북한의 국제관광총회사 지도원은 『금강산이 남쪽의 설악산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또 다른 금강산 관리원은 우리 관광객이 『설악산에도 한번 구경하러 오세요』하자 『쓰레기천지인 설악산에는 뭣하러 갑니까』하고 말을 받았다.
금강산 대신 설악산을 구경하고 오는 그 긴 빨간 등의 행렬을 보자, 지옥에서 극락으로 왔구나, 북한과 남한은 이런 엄청난 격차가 있구나, 역시 남한은 잘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울화가 치밀었다. 아까운 시간을 길바닥에 줄줄 흘리는 짜증에서만이 아니었다.
금강산 관광단 일행이 동토(凍土)의 북한 땅에서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기를 펴고 다닌 것은 우월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쪽은 너희쪽보다 잘 산다는 생각이 자신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어떤 관광객은 북측 사람들 앞에서 『쌀 9가마 값 주고 금강산 구경왔다』고 떠벌렸고 또 어떤 실향민은 『이산가족만 만나게 해 준다면 한보따리 싸가지고 와서 풀어놓을텐데』하고 푸념삼아 으스댔다.
금강산 관광여행 동안 점심은 김밥도시락이고 아침 저녁 식사는 호화유람선의 선내에서 푸짐한 음식이 뷔페식으로 제공되었다. 성찬을 먹으면서 선창(船窓)밖으로 내다보이는 금강산, 그 금강산 자락에서 퀭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주민들을 생각하면 목이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돌아와보니 길바닥에 늘어선 것은 오만의 행렬이었다. 텅 빈 거리에서 가득 찬 거리로 귀환했으나 마음은 배부르지 않고 공허해진다. IMF체제의 늪에 빠진지 1년, 아직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의 허세가 이렇다. 결식아동은 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도 있다. 200만에 가까운, 북한군 병력의 2배에 이르는 실업자가 실의에 빠져있는 나라이면서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남은 북한의 물질적 빈곤을 비웃고 있지만 북은 남한의 정신적 빈곤을 비웃고 있다.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오히려 북적거리지 않고 훼손되지 않은 금강산같은 순수성을 가졌다. 금강산도 설악산도 혈맥(血脈)처럼 같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줄기인데, 우리의 정신은 북쪽 사람들이 빈정대듯 쓰레기 천지의 설악산처럼 훼손되어 있다. 걸어다니라면 학교에 안갈 애들의 정신을 갖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지금 까불고 있다. 우리는 북쪽을 보고 불쌍하다고 한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불쌍한가.<논설고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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