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은 절망의 시대였다. 체제비판을 무자비하게 억압한 긴급조치, 긴급조치에 대한 비판마저 철저하게 봉쇄해 버린 완벽한 독재체제가 절망의 진원지였다. 양민을 학살한 내란 주범이 7년간 대통령으로 있었던 80년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내란의 제2인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80년대 말의 절망감도 그 못지 않았다.그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은 부정부패가 그저 정치적 독재의 동반증상인 줄 알았다. 독재가 끝나면 부패도 사라지려니 믿었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대통령이 칼국수를 먹으면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동안에도 부패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낸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아직은 뚜렷한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더러는 20세기형 「삼정문란(三政紊亂)」을 거론하지만, 우리가 나날이 목격하는 부정부패는 사악한 권력자가 선량한 백성을 수탈한 고전적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날의 부정부패는 「바치는 자」와 「먹는 자」가 제3의 피해자를 등쳐먹는 공생관계의 발현형식이며, 이렇게 형성된 먹이사슬은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지배하는 생활의 불가결한 조건이 되어 버렸다.
부정부패의 본질은 이기적 개인들의 음성적 거래다. 이 거래를 통해서 정치인은 정치자금을, 공무원은 재산을, 업자들은 이윤을 극대화한다. 끊어진 다리와 무너진 백화점,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아이들, 폭발하는 가스충전소, 미성년자 접대부를 쓰는 단란주점, 이런 것들은 모두 사익 극대화로 맺어진 먹이사슬의 사회적 비용이다. 윤리도덕에 대한 그 어떤 설교나 의식개혁운동 연사들의 피맺힌 절규도 사익의 극대화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억압할 수 없다. 「부패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이념은 도덕재무장이 아니라 「이기적 인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다.
시민단체와 언론과 정부에서 거론되는 부정부패 근절 대책을 보면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은 거의 다 나와 있다. 쓸 데 없는 규제의 혁파는 먹이사슬의 규모를 줄인다. 내부고발자 보호장치 마련과 특검제의 도입 등은 뇌물을 주고 받는 음성적 거래가 적발되고 처벌받을 확률을 높인다. 부정축재한 재산의 몰수를 포함한 강력한 응징을 법제화하면 적발될 경우 받을 처벌의 강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해서 「부패의 현재적 효용」, 즉 받아먹을 수 있는 현찰의 부피가 줄어들고, 적발 확률과 처벌의 강도 등 「부패의 잠재적 비용」이 늘어나면 사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기적 개인들의 음성적 거래행위는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을. 부패와의 전쟁에 쓸 수 있는 갖가지 정책수단이 널려 있어도 그것을 집행할 사람이 없으면 별 소용이 없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볼 때, 「반(反)부패 전선」의 선봉부대는 검찰과 법원 등 사법부이다. 장관과 중앙부처의 고위관료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책임자들이 주력부대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은, 정치권력과 일정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상식을 전제로 하고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면, 썩고 냄새나는 곳을 들추어 내고 사기를 북돋우는 척후지원부대쯤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누가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한 부정부패의 먹이사슬에서 자유로운가? 어차피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 지난날의 과오를 진솔하게 반성한 집단이라도 있는가? 매우 드물다. 특히 아쉬운 것은 사법부와 언론의 고백과 다짐이다. 그래서 상황은 다시금 「절망적」 이다. 「국민의 정부」가 사법부와 언론을 이 먹이사슬에서 끊어내기 위한 비상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먹이사슬 꼭대기를 차지한 인물들의 출신지역이 바뀌는 데 그친 과거 정부의 부패 척결 소동을 또 다시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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