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부터 90년까지 17년간 칠레를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대통령은 70년대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통해 군부독재정치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고문하고 쥐도새도 모르게 없애버렸다. 그 숫자가 칠레에서는 3,000여명, 아르헨티나에서는 6,000여명이나 된다. 70년대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등 제3세계가 온통 군부독재로 뒤덮였던 세월이지만, 이들 두 독재국가가 가장 악명이 높았다.피노체트는 집권 17년동안 무자비하게 인권을 탄압했으나, 칠레 경제를 남미에서 제일 발전시킨 공로자로 꼽히는 등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10월16일 영국병원에서 고문 납치등 국제법위반혐의로 체포되자 국론이 찬반으로 엇갈려 있다고 한다. 영국 상원은 25일 피노체트에게 면책특권이 없다고 판결했다. 인권침해혐의로 유럽에서 재판을 받아야하는 자국 전직대통령을 놓고 칠레정부의 입장도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피노체트는 영국을 좋아했다. 그래서 대통령퇴임후 첫 해외여행지로 지난 10월 영국을 찾았다. 런던에서 바바리 쇼핑도 하고 옛 친구인 마거릿 대처 전총리와 만나 차를 마시며 환담도 했다. 그러나 느닷없는 체포와 83회 생일에 내려진 최고재판부의 면책특권 거부로 이제 그는 다시 따뜻한 고국 칠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만은 없게 됐다. 스페인을 비롯,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는등 사법처리를 벼르고 있다.
영국재판부의 판결로 피노체트의 재판을 놓고 국제사회는 숱한 논쟁을 벌일 것 같다. 그러나 피노체트에 대한 체포와 면책특권 거부는 고문과 인권유린으로 정권을 유지해온 독재자들에게 도피처가 없어지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피노체트의 체포소식을 듣고 쿠바의 카스트로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면 대단한 관심거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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