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짝·峰마다 깃든 魂을 봐야한다,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산일뿐한국일보에 소설 「상도(商道)」를 연재중인 소설가 최인호(崔仁浩)씨의 금강산기행문을 싣는다. 최씨는 20∼24일 봉래호를 타고 금강산관광을 다녀왔다.
1.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 산
아니나 다를까 염려했던 것이 그대로 되었다.
배에 승선한 후 내 방의 열쇠를 갖고 가장 낮은 밑방으로 들어가보니 웬 할아버지 한 사람이 앉아 있더군. 명찰 속에 적힌 이름은 ○○○. 생년월일은 1911년 1월4일.
『이봐 젊은이, 내 고향은 황해도 평산이오. 아들 둘에 마누라 남겨놓고 피난와서 부천에서 50년을 내리 살았지. 그러다가 새 마누라 얻었어. 살다 싶더니 도리짓고 땡을 해서 두 번이나 다 날려버렸지. 딸 둘을 낳았어. 그런데 살만 하니까 마누라가 오년 전에 또 죽더군. 그래서 다시 마누라를 얻기 시작했지. 그런데 이 년들이 보통 년들이 아니야. 시집올 때 금반지 해주면 그만이지 꼭 집을 등기해달래. 그래 내가 말을 했지. 이 년들아, 등기해주면 내가 먹는 밥에 독약이라도 쳐넣어 죽이려고 그러냐. 그랬지. 한 달도 못 채우고 모두들 도망치더군. 지금은 일곱번째 마누라하고 살고 있는데 언제 또 도망갈지 모르겠어. 죽기 전에 금강산이라도 봐야 할 것같아 이렇게 왔지』
그 이후부터 난 이 할아버지의 충실한 개가 되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이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붙어 다녔어. 5층 응접실에 앉아 있는데 이 할아버지는 두리번거리면서 같은 황해도사람들을 찾다가 갑자기 소리치면서 말했어.
『자네 웬일인가. 왜 거기 앉아 있어』
나는 할아버지가 손짓하는 것을 보았지. 그것은 놀랍게도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어.
『할아버지, 그건 거울이에요』
내가 말해주었는데도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어.
『이리 와, 이리로 오라니까. 같이 얘기하자니까』
할아버지는 거울에 비친 자기자신의 모습을 계속 손짓하고 부르는 것이었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이 웃더군. 아이구야 야단났군. 난 정말 한심했어.
『할아버지 그건 거울이라니까요』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거울 뒤쪽을 들여다 보고서야 말했어.
『내 참 거울 아니야. 힛히히』
참으로 다행인 것은 또 한 할아버지가 우리 방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야. 이름은 ○○○. 생년월일은 1925년 2월11일이더군. 고향이 장전으로 사변 후 넘어와 해공(海公) 선생 밑에서 정치하다가 감옥에도 들어갔었던 사람이래. 아이고 다행이다 싶어 두 사람을 의형제로 맺어드렸지. 그 다음부터 이 두 할아버지는 동성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손을 잡고 붙어 다녔다. 나는 비로소 개에서 인간으로 부활하였지. 그 날 밤. 나는 갑판으로 나갔지. 칠흑같은 밤바다가 뱃전에 부서지며 흰 물결을 토해내고 있더군. 마치 검은 비단폭을 날카로운 칼날로 베듯이 말이야. 속절없는 갈매기가 계속 배를 따라오고 있었어. 나는 그 검은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았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내 나이 열살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어. 평양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변호사를 하다가 피난와서 아까운 나이 마흔아홉에 돌아가셨지. 임종무렵 혼수상태에 드셨는데 그럴 때마다 헛소리를 하셨어.
『난 이 다음에 죽으면 금강산에 놀러 갈꺼야』
이미 군사분계선을 넘은 배는 캄캄캄캄캄캄캄캄캄캄한 바다를 달리고 있었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금강산에 가면 죽은 아버지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을까.
2.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긴장은 잠깐이었어. 한 시간쯤 북한땅을 밟는다는 긴장뿐 버스에 타고 나니 그냥 관광이었어. 버스에 내어 걸린 TV가요방에서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 거야.
『비내리는 호남선 완행열차에 사이사이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아이고 좋다 꿍따라닥 삐약삐약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미치고 환장하겠네 오빠…』
달리는 버스를 따라 늘어선 철조망. 그 철조망 밖에는 500여m의 간격마다 군인들이 로봇처럼 서 있었어. 간혹 보이는 주민들은 애써 우리를 모른 체 외면하고 내 앞자리에 앉은 경상도아줌마는 사람들만 보면 손을 흔들다 나중에는 창문을 열고 손에 머플러를 든채 깃발처럼 계속 손을 흔드는 거야. 시아버지를 모시고 온 이 아줌마는 만물상도 안 오르고 구룡폭포도 안 오르고 하는 일이라고는 손을 흔드는 일이었어. 그러다가 간혹 북한주민이 손을 마주 흔들면 이렇게 말을 하곤 했어.
『우야몬 좋노. 불쌍해서 우야몬 좋노』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진짜로 불쌍한 건 우리 자신인지 몰라. 헐벗은 산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회색 잿빛의 벌판에는 붉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구호가 걸려 있더군.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
3.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구룡폭포 들어가는 산 입구에 붉은 글씨가 새겨진 석비가 있었어.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 동지께서는 1947년 9월28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와 함께 구룡연으로 오르시던 길에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실 어버이수령님의 점심식사가 못내 염려되시어 모처럼 마련된 탐승길도 뒤로 미루시고 이 곳에서 걸음을 물리치셨다. 존경하는 김정숙 동지께서는 그 이후에도 끝내 금강산을 찾지 못하셨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73년 8월19일 금강산을 찾으셨을 때 김정숙 동지의 고결한 충실성에 대하여 가슴 뜨겁게 회고하셨다』
「배고픈 남편 김일성에게 점심 차려주느라고 산에 못 오른 아내 김정숙」의 이야기가 이렇게 살아 있는 전설이 되는 북한사회. 그 뿐인가. 보이는 절경, 보이는 바위마다 새겨진 김일성의 이름 이름들. 그러나 그것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신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하느님과 부처님을 의지하듯 가엾은 그들은 김일성을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 뿐이다. 어찌하란 말인가. 무신론의 공산주의에서 의지할 곳은 김일성 어버이뿐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저 암벽마다 김일성의 이름을 새긴 그들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그들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우리들 자신인지 모른다. 우리들은 보이는 곳마다 재물과 권력의 이름을 새기는 광신도가 아닐 것인가.
4.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금강산은 불교경전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경」에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라는 말에서 나온 금강산. 보석으로는 다이아몬드를 금강석으로 부른다. 그러므로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골수가 담긴 보석이다. 다이아몬드다. 따라서 금강산을 보러 가서는 안된다. 금강산에 가면 금강을 봐야 한다. 산골짜기마다 산봉우리마다 민족의 혼이 숨쉬고 있다. 그 봉우리 속에 들어 있는 민족의 사리(舍利)를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강산은 다만 하나의 평범한 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금강산의 절경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다만 하나의 일원상(一圓像)을 그려보이겠다.
「○」.
5.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몇해
금강산 입구에는 북한 국보유적 제95호의 신계사(神溪寺) 절터가 있었어. 그 곳에도 김일성의 교시가 내려져 있더군.
『위대하신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다. 신계사에 있는 3층석탑은 지금으로 부터 1,400년 전에 세운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존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표현대로 미제국주의자들의 폭격에 의해서 불타버린 신계사는 원래 519년 신라의 법흥왕(法興王)때 보운조사(普雲祖師)에 의해서 창건된 절이었다. 내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 한말의 선승 경허(鏡虛)는 이 절을 찾아 와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신계사의 문을 두드리니 외금강의 절경이다/집선봉에 가던 구름 구름조차 흩어지고/문필봉에 묘한 형용 석가세존을 대하였다』
경허가 노래하였던 절은 사라지고 무너졌으나 절터를 끼고 있는 집선봉에는 아직도 구름이 흘러가고 문필봉은 마치 석가세존의 모습을 닮아 있다. 그러나 모두 다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사라졌는가. 불교의 성지 금강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금강산에서 가장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는 구룡폭포 옆 암벽의 세 글자 「미륵불(彌勒佛)」. 이제 그만 내려오너라. 오십육억 칠천만년 후에나 온다는 미륵불이여. 이제 그만 내려오너라.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도 두 아이를 데리고 선녀와 함께 내려오너라. 내려와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민주주의, 우리와는 상관없는 공산주의 때문에 애비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에미를 죽인 이 죄없어 죄많은 강토에 감로수를 뿌려 잠든 이 민족을 깨어나게 하라. 저 무너진 삼층석탑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일만이천봉의 금강산의 봉우리들 모두가 벌떡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게 하라. 일어서서 이 강산에 찬연한 불국정토를 찾아오게 하라.
6.아아,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 지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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