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도 연극으로 살았던 그 열정 이으렵니다/생전에 준비중이었던 악극 ‘가거라 삼팔선’ 내년 2월 예술의전당 무대에/유작에세이집 ‘광대와 시인’ 출간 김상열연극상도 만들 예정지난달 26일 세상을 뜬 연극인 김상열씨는 마지막 밤을 무대에서 살았다. 악극 「가거라 삼팔선」공연을 준비중이었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에게는 병실도 무대였다. 병원침대에서 『발을 올려달라』는 김씨의 다리 밑에 베개를 고여주자, 『아니 무대 위에』. 가족이나 극단 단원이 들어올 때는 입장하는 배우에게 말하듯 『다시 잘 들어오라』고 했다. 뿌연 가습기 연기에 대고는 『스모그는 안쪽에서 나와야지』라고 호통을 쳤다. 다음날 이른 아침 숨을 거두자 임종한 후배들은 『즐거이 놀고 가셨다』고 그의 삶을 말했다.
향년 57세. 죽음은 돌연했다. 그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미련은 이제 선·후배들에 의해 매듭지어진다. 지난 여름 김씨가 췌장암임을 알지 못한채 시놉시스를 완성한 「가거라 삼팔선」이 목포 극작가 김창일씨의 극작, 원로극작가 차범석문예진흥원장의 윤색을 거쳐 내년 2월1∼17일 예술의전당에 오른다. 70년대 김씨가 몸담았던 극단 가교, 88년 창단해 10년간 대표를 맡아온 극단 신시가 함께 제작한다. 연출자는 미정이지만 차범석원장이 예술감독을 맡기로 했다. 윤복희씨등 김씨와 함께 작업했던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겠다고 나섰다. 김상열 추모공연을 위해 여러 연극인이 뜻을 모으는 셈이다.
김씨는 젊은 시절 연극 「애니깽」 「등신과 머저리」등을 쓰고 연출하며 재기(才氣)를 떨쳤고 뮤지컬 「에비타」 「피터팬」등으로 대극장 무대를 다룰 줄 아는 얼마 안되는 연출가로 꼽혔다. 그의 「젊은 말년」은 악극에 치우쳤다. 『악극이 과거지향적이라는 데 비판의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만큼 대중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며 현재적 의미가 담긴 악극을 추구했다. 이산가족을 통해 분단의 한을 담은 「가거라 삼팔선」은 그런 의미에서 금강산의 오열을 지켜보는 90년대의 악극, 그 신호탄이다.
극단 신시는 이와 함께 내년 2월11∼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라이프」를 재공연한다. 「라이프」와 「가거라 삼팔선」의 공연수익금으로 김상열연극상을 제정할 예정이다. 88년 김씨가 쓰고 연출한 「님의 침묵」을 관람하며 인연을 맺은 구룡사주지 정우스님이 앞장서고 있다. 정우스님은 90년 구룡사를 지으면서 신시에 연습실과 사무실을 무료제공해 온 후원자로 내년 경기 일산에 완공되는 여래사에도 400여석의 소극장을 만들어 신시에 공연토록 할 예정이다.
26일엔 유작에세이집 「광대와 시인」(형제문화출판사 발행)이 나왔다. 극단 가교 현대 신시, 마당세실극장과 구룡사등을 거치며 연극을 만들어 온 김씨의 무대 뒤 단상을 담고 있다. 신시대표 대행 박명성씨는 『극작과 연출을 도맡아온 그의 빈 자리가 크다. 그러나 존폐위기에 선 극단에 힘을 모아준 연극인의 뜻을 받들어 신시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말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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