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숴버린 액자… ‘틀’ 깬 전시회/형식을 깬 다양한 실험 시도 /70∼90년대 작품 100여점 선봬액자는 그림을 담는 틀이다. 그러나 틀은 언제나 일정한 모양새를 갖추게 마련. 회화의 보관을 위해 르네상스 초기부터 나타난 액자는 어느새 그림의 형식을 규정하는 틀이 되어 버렸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다. 액자는 그림의 틀이자, 그림을 그리는 마음의 틀로 존재한다.
금호미술관이 개관 9주년 기념전으로 마련한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전은 한국 근대미술을 가볍게 다룬다. 지난해 「한국 모더니즘의 전개」가 7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미술을 장르 중심으로 정의했다면 이 전시는 한국미술의 「틀」을 중심으로 말한다.
다양한 액자의 틀을 이용한 작가부터 상식과 장르의 「틀」을 깨버린 실험적 작품까지 70년대부터 90년까지의 작가 67명의 작품 100점이 전시된다. 지하 1층에는 병풍같은 전통 틀을 원용한 작품부터 싸구려 전단 느낌이 나는 민중미술가들의 파격적 작품까지 다양하다. 나무를 길게 깎아 이어 붙여 호랑이 그림을 그린 작품(김동유)은 옛날의 호랑이 병풍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고, 8폭 병풍을 조각 조각 나눈 뒤 뒷면에 현대적 회화를 그린 작품(허구영)은 옛 형식과 현대적 감각의 합주(合奏)이다. 반면 입후보 정치인을 마치 타이틀 매치를 연상시키는 복싱 광고전단처럼 만든 작품(박불똥)이 있는가하면 싸구려 달력을 연상시키는 작품(박이소)도, 국내외 고전 회화를 슬라이드 프레임 안에 넣어 두고 회화사를 조롱하는 작품(배준성)도 기발하다.
우리나라에서 화가들이 액자를 끼우지 않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미니멀리즘 작가들부터. 1층 전시실에는 이런 시도를 시작한 하종현 이인현 김창열 등과 73년 전통 창틀을 회화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인 김홍주, 캔버스를 커튼처럼 늘어뜨려 틀을 거부한 김용익의 작품이 전시됐다. 한국에서 틀을 허무는 역사가 처음 시작됐던 순간을 조망하는 것이다.
2층 전시실에는 사진과 비디오설치 작품 중심. 여성이 부지런히 화장하는 모습이 커튼에 그림자로 비치는 비디오 프로젝션 작품(이중재)은 비디오 작업의 틀인 「TV 수상기」를 박차고 나온 케이스. 회화적 프레임을 차용한 육태진 비디오 설치 「파리 애마」, 브라운관을 깸으로써 틀의 해체를 암시하는 김해민의 비디오 작품 「망치작업」도 인상적이다. 3층에서는 바늘 고리 등 우리 전통적 살림살이를 차용한 도윤희의 프레임과 캔버스에 프레임을 그려넣어 프레임과 그림이 구분되지 않는 정진현의 작품, 검은색 테이프를 이용, 화장실 환풍구 등을 벽면에 그려넣은 한수경이 인상적이다.
4개 전시실과 계단 통로에까지 작품이 확대되어 걸려 있는 점도 전시의 「틀」을 깨려는 시도. 근대회화 유입기 시절의 고전적 작품이 없는 점은 아쉽지만 개념이 비슷한 작가의 작품을 과감히 혼합해 전시함으로써 관객이 작품 중심으로 즐길 수 있도록 꾸민 점은 가장 큰 장점이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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