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롭게 보듬는 굴절된 풀뿌리들의 삶/자자손손 사는 화전민 마을/정치·이념에 할퀴어졌지만/훼손될수 없는 그네들 역사/30여년간 홀로사는 작가가 민담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몽실언니」의 동화작가 권정생(61)씨가 장편소설을 썼다. 19세기말 이후의 우리 근·현대사를 살아온 풀뿌리같은 삶들의 이야기 「한티재 하늘」(지식산업사 발행). 어린이를 위한 동화, 산문만 써온 권씨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하지만 「한티재 하늘」에는 소설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주인공들이나 극적인 이야기는 없다. 과장된 상상력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쓴 소설이다. 마치 우리 전래의 민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직조한 것같은 글이다. 한티재는 경북 안동지방의 화전민마을이다. 그 곳에서 살아갔던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문둥병 때문에 소박맞은 분옥이와 그이를 색시로 데려간 떠돌이 동준이 아저씨, 아버지가 빤란구이(의병)여서 할아버지가 못물에 빠져죽은 서억이 아저씨, 심덕좋은 김진사집 여종 사월이와 그 사월이를 색시삼으려고 10년 새경을 다 털어넣은 기태…. 「분단이나 정치, 종교 혹은 자본같은 이념이 그들의 삶을 굴절시켰지만 그들의 삶의 구체성마저 굴절될 수는 없다」는 데서 권씨의 이번 글쓰기는 출발했다.
『어르신들한테 오래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해주신 말씀이란 게 질서없는 이야기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이번에 출간된 두 권은 1896년부터 1937년까지의 시간이 배경이다. 작가 권씨 자신이 태어나던 해까지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산에 가면 산나물을 뜯거나 인동꽃을 따면서, 집에서는 삼을 삼거나 바느질을 하면서 등을 돌린 채 혼잣말처럼 조용조용 들려주던 이야기가 뼈대이다. 권씨의 이야기 방식도 그 어머니 말씀처럼 따스하고 구체적이다. 그래서 감동은 더하다. 실패하고 비참한 삶의 이야기지만 결코 역하지 않고 다사롭다. 권씨는 이후 해방과 6·25를 거쳐 70년대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8∼10권 분량으로 쓸 작정이다. 『10년 전부터 쓰려고 별렀던 이야기지만 건강이 조금 나아지면 써야지 하다가 늦어졌고 자꾸 더 미루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95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권씨는 지금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의 농가에서 혼자 산다. 하지만 식구는 셋이다. 오래전부터 키우던 7살 난 「뺑덕이」와 얼마 전 길잃은 것을 주워다 키우고 있는 「두데기」 두 마리의 개가 그가 먹여살리는 식구들이다. 평생을 동남(童男)으로 지냈고, 30여년 전부터는 완전히 홀몸으로 살면서 돌보지 않은 몸이 나빠져 신장투석을 하면서 그는 글을 쓴다. 요즘은 하루 한두 장, 많으면 10장 정도씩 쓰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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