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변에 깃든 고고한 선비정신 찾아서『石田茅屋肅肅然(석전모옥숙숙연·돌밭에 초가집이 쓸쓸하여라) 探蹟硏幾毋自損(탐적연기무자손·학문 이치 연구하여 자포자기 말기를)』 조선후기 영·정조∼헌종 무렵 졸지에 첩첩산중 북한강유역으로 밀려나 살게 된 선비들. 그들은 실지회복의 앙심에 사로잡혀 절치부심하지 않았다. 자연을 벗삼아 안빈(安貧)하고 생을 관조했다. 그러나 결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서울로 이어지는 물길과 수려한 산수에서 그들의 학문은 깊어만 갔다. 권좌에서는 멀어졌지만 선비로 살다 선비로 죽었다.
한림대 아시아문학연구소가 펴낸 제11회 학술발표연구논문집 「북한강유역의 유학사상」은 험준한 오지로만 인식돼 온 북한강유역이 오히려 학문의 산실이었음을 밝혀준다. 심경호(沈慶昊) 고려대 한문학과교수등 교수 6명의 논문이 실려 있다.
김상덕(金尙德)의 자손들과 문인들이 학문을 연마하던 석실서원(石室書院), 성호학파의 태두 안정복(安鼎福)이 살던 덕곡리(德谷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살던 마현(馬峴)등 불우한 석학들의 집결지처럼 됐다. 그들의 대쪽같은 반청(反淸)의리는 한말 위정척사운동과 항일의병의 혈기로 이어지기도 했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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