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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우리집 있었는데…” 한맺힌 눈물/금강산 관광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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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우리집 있었는데…” 한맺힌 눈물/금강산 관광 취재기

입력
1998.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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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땅에 첫발 “흙도 사람도 다르지않아”/빨래터·들녘서 만난 주민들 ‘친숙한 얼굴’분단의 아픔과 실향의 한을 달래기에 사흘은 너무 짧았다. 귀향길에 오른 관광객들은 못다한 아쉬움에 예정보다 두시간 늦은 출항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관광보다는 남기고 떠났던 반쪽을 찾기에 정신없었던 실향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돌아서는 뱃전에서 눈시울을 적셨다. 그러나 반세기만에 찾은 금강산에서 관광객들은 흙도 사람도 하나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땅」임을 분명히 확인했다. 사상 첫 금강산 관광 4박5일을 정리한다.

18일 오후 5시30분 초겨울 어두워진 밤하늘에는 불꽃놀이가 수놓는 가운데 금강호는 동해안을 출발했다. 배 갑판에서 손을 흔드는 환송객을 바라보며 살얼음판 걷듯 아슬아슬했던 금강산 가는길이 비로소 열린다는 감회에 젖는 것도 잠시 먼 바다로 배가 들어서면서 파도가 심해졌다. 3∼5m의 풍랑으로 2만톤이 넘는 유람선도 요동을 쳤다. 멀미로 인해 2명이나 의무실에 입원해야 할 정도였다. 19일 새벽 4시 북방한계선으로 접어들었다.

이제부터 북한땅인 셈이다. 장전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40분께. 시험운항과 마찬가지로 북측 도선사의 도착이 2시간정도 늦어졌기 때문이다. 장전항은 항아리모양으로 생긴 만을 따라 금강산의 줄기로 보이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해안을 따라 100여채의 집들이 듬성듬성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의 회색빛깔과 나무가 없는 민둥산들이 주는 을씨년스러움이 항구북쪽에 정박한 6척의 군함탓에 긴장감으로 바뀔즈음 먼 발치 흰눈을 머리에 얹은 금강산 봉우리들이 보였다.

북한땅을 밟은 것은 오전 11시께 부속선인 장전1,2호의 접안과정과 가이드들의 교육등으로 3시간여 지루함을 견딘 뒤였다. 북한땅의 첫 느낌은 흙도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부두에는 「금강산 관광객들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합니다」 「민족의 자랑 금강산」등 붉은 글씨의 환영문구들이 내걸렸고 마이크로 버스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민요가 요란스럽게 울려퍼졌다. 북한측의 환영행사인 셈이다. 현대측이 만든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20여명의 북한사람들이 관광객들을 맞았다. 수속은 신속하게 이뤄졌고 검색도 수월한 편. 4개의 출국심사대와 엑스레이 검색대를 거치는 동안 관광객들만큼이나 굳은 표정의 관리소 직원들에게서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졌다.

출입국 사무소를 나서자 오른편에 현대측이 마련한 임시 매대가 보였다. 코스별 이동매대가 있긴 하지만 아직 개점준비가 덜 돼 북한 특산물을 살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버스편에 올라타 구룡폭포 만물상 해금강 등 3개 코스로 나뉘어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다. 버스 주차장 앞에 펼쳐진 현대측 자재창고와 주유소 등 건설현장에서는 현대직원들과 북한 주민들이 어울려 작업을 하다 말고 손을 흔든다. 이어 주민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3m 높이로 세워진 철망이 2차선 관광도로를 따라온다. 500m마다 비무장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관광버스를 지켜보는 살벌함도 잠시, 온정리 마을의 일상을 만난다.

아낙네들은 개천에서 빨래를 하고 남정네들은 들녘과 마을 주변에서 작업을 하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잠시 눈을 돌리는척 하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는 표정이다. 어린이들만은 천진하게 손을 흔들어주곤 하지만 돌아오는 날쯤 되니 어른들도 간간이 손을 흔들어 친숙함을 전해온다. 금강산은 백두대간의 능선을 기점으로 수려한 계곡미를 갖춘 내금강과 장엄한 산악미의 외금강, 그리고 바다를 낀 해금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개설된 3개의 코스는 외금강과 해금강 일부로 전체 금강산 관광코스의 5분의1수준이다. 구룡폭포 코스가 나뭇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상팔담까지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물의 세계라면 만물상은 기묘한 전설들을 담은 돌들의 세계, 그리고 해금강은 돌과 바다가 만나는 접점이다. 코스 곳곳에서는 실향민들의 제사가 펼쳐지고 북한 안내원과 관광객들이 어울려 「우리의 소원 통일 」을 합창하기도 했다.

금강산 굽이굽이마다 분단의 아픔과 실향민들의 한이 서리는 순간 순간들이었다. 21일밤 북한측이 제출을 요구한 관광증 반납이 일부 되지 않아 출항이 늦어진 사이 갑판에서는 실향민들의 안타까운 외침들이 가득했다. 『오마니, 제가 왔다 갑니다. 꼭 다시 오겠습니다』 실향민들은 『몸은 가지만 마음은 두고간다』며 멀어지는 장전항을 바라보며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금강호 선상에서="이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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