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불효자 첫 제사 올립니다”/장전서 거주… 北 관계자 “돌아가셨다” 48년만에 소식듣고 옥류동계곡서 통곡『어머님』 희수(喜壽)의 실향민이 금강산 관광길에 꿈에도 그리던 어머님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고 오열했다. 금강산 유람선 「현대금강호」를 이용, 18일부터 금강산관광에 나섰던 박순용(朴淳瑢·77·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씨는 21일 북한 당국을 통해 어머니의 사망을 48년만에 확인했다.
박씨는 19일 장전항 북한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한국전쟁 당시 장전에 살고있던 어머니의 생사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애원했다. 첫날 관광후 유람선으로 돌아오면서 출입국관리소측에서 반응이 없을까 하고 최대한 승선을 늦췄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실망이 컸던 박씨에게 21일 아침 관광길에 북한측 관계자가 나타났다. 순간 박씨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는다는 직감에 숨이 멎는듯 했다. 이 관계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자신의 나이가 팔순이 가까워진 상태에서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박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박씨는 사망 소식을 듣고 이날 금강산 옥류동계곡에서 간단한 제수용품으로 제사를 올렸다. 박씨는 『오랫동안 어머님 소식을 기다렸는데 막상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며 눈물을 적셨다.
그는 또 『장전항에 도착했을 때 「금강산관광객들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북측에 동포애를 보여달라며 확인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평양 출신이지만 집안이 장전항에서 대규모 정어리공장을 운영한 이유로 장전이 제2의 고향이 됐으며 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나 당시에는 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었다.
이날 박씨의 어머니 생사확인은 민간교류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것으로 금강산관광뿐 아니라 앞으로 민간교류를 통한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씨의 부인 이정호(李貞浩·69)씨는 『남편은 평소 어머님을 못잊어 명절때만되면 북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며 『이번에도 금강산 관광보다는 어머님의 생사를 꼭 확인하겠다며 관광선을 탔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어머니와 어떻게 헤어지게 됐나.
『해방이후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다시 모시러 왔는데 어머님은 「전 재산을 투자한 정어리가공공장을 포기할 수 없다. 너는 서울에서 기반을 잡으라」며 장전에 남으셨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은.
『처음에는 90대 할아버지가 이번 금강산관광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도 살아계실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위는.
『밝힐 수 없다』
금강산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이제야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라고 했다』
금강산 관광을 마친 소감은.
『사실 금강산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계신 장전항을 보러왔던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금강산을 남측 관광객들이 망쳐버리지나 않을까 몹시 걱정된다. 금강산 관광이 남북의 민간교류 활성화에 디딤돌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현대 금강호 선상에서="이재열·이영섭" 기자>현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