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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과 연정합의 오자와 자유당당수(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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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과 연정합의 오자와 자유당당수(뉴스 메이커)

입력
1998.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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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회복 ‘마지막 승부수’일본 자민당과 자유당이 19일 연립정권 수립에 합의, 일본 정계 재편에 큰 가닥이 잡혔다. 93년 6월 자민당 분열 이래 이합집산을 거듭한 일본 정계가 「사실상의 구(舊) 자민당 부활」로 옮겨가는 모습에 그동안의 정계개편 논의가 결국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56) 자유당 당수의 「5년여의 방랑」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탄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일련의 일본 정치 변화는 사실 92년 10월 그가 다케시타(竹下)파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반(反)오자와파」에 패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93년 6월 야당이 제출한 미야자와내각 불신임안에 찬성, 중의원 해산을 부르고 자민당을 뛰쳐 나갔다. 이 승부수로 93년 7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연립내각을 수립하고 일본 정치를 뒤에서 주물렀다. 94년 6월 자민당과 사회당·사키가케의 연정도 핵심 성격은 「반오자와 정권」이었다.

그러나 「반오자와 정서」가 국민들 사이에까지 침투하면서 그는 힘을 잃어 갔다. 정권 탈환을 겨냥, 94년 10월 신진당을 결성했으나 잇단 이탈로 올 1월 해산해야 했고 새로 만든 자유당도 내년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 유지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정권 유지」를 노린 자민당 지도부의 제의에 선뜻 응한 것은 세력 회복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다.

69년 27세에 아버지 뒤를 이어 이와테(岩手)에서 중의원에 당선된 10선. 아들처럼 아끼고 정계의 권모술수를 가르쳤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네마루 신(金丸信) 등 후견인은 이미 세상을 떴다.<도쿄=황영식 특파원>

□약력

·92년 권력투쟁 패배

·신진·자유당 결성

·10選 권모술수 뛰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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