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험이 있는 날의 날씨는 어김없이 차고 맵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치듯 영하 몇 도, 꼭 이런 식이다. 「시험에 빠지게 하지 말아야 할 젊은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속죄라고나 할까. 그들의 편의를 위해 조금 늦은 출근이 허용되는 날이라 러시아워를 지난 시각에 지하철을 탔다.강변역 어름에서 내 어머니보다는 10살쯤 연하의 어르신이 올라 경로석 자리의 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잡았다. 나보다는 또한 10살쯤 어려뵈는 정갈한 차림의 여성이 손을 끌어 어르신을 앉혔다. 전동차는 몇 정거장을 지났고 내릴 곳에 다다라 나이든 여인이 내리면서 자리를 양보해준 젊은 여인에게 도로 앉으라고 손을 끌었다. 고마워하는 웃음에 수줍음이 배인 순박한 분이었다.
그런데 젊은 여인은 어르신의 손을 공손히 말리며 말했다. 『그 자리는 비어 있어야 합니다』.
별 말이 아니라면 아닌 얘기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별 말이 아니라면 별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가. 사람은 할머니처럼 겸손하게 고마워할 줄도 알아야 하고 젊은 여인처럼 양보의 미덕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사실을 확인해 본 바 없는 얘기니 심각히 듣지는 말 일이다. 석학 아놀드 토인비가 저승 가기 얼마전 쯤, 기자가 찾아와 물었다. 『선생은 돌아가실 때 하나만 가져가신다면 무엇을 싸들고 가시겠습니까』. 토인비 선생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동방의, 그것도 바로 코리아의 대가족제도』
어른의 기침 소리 하나로 가정을 가르치고 마을을 다스리고 세상을 바로 세운 그 저비용 고효율의 제도. 우리가 진짜로 가지고 있던 보배같던 교육기관이 이젠 전동차 입구 좌석 위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렇다. 그 자리는 비어 있어야만 한다. 어른이 있으므로 비로소 돌아가던 세상을 위해 더 진한 글씨로 박아 놓아야 한다. 「삼가 여기는 어른이 앉으실 자리이므로 젊은이들의 출입을 절대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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