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 대응프로그램 없어/말聯美 장외갈등도 악재아시아 경제위기가 「태평양 시대」에 암운을 드리운 것일까. 역내 금융위기 1년여를 맞아 그 어느때보다 비상한 관심을 모은 이번 APEC 정상회의는 결국 회의 자체의 효용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빈 잔치」로 끝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장의 현안인 아시아 경제위기 해법과 관련해 구체적 대응 프로그램의 산출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회복을 위한 대책은 선진 회원국간 주도권을 노린 생색용 지원이나 선언적 합의에 그쳤고, 헤지펀드 규제나 위기국 채무탕감 등 아시아국들의 희망사항은 미국 등의 반대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APEC의 핵심의제인 자발적 조기 무역자유화(EVSL)문제 역시 미국과 일본의 대립 끝에 세계무역기구(WTO)에 해결책을 위탁하고 말았다.
미국과 주최국인 말레이시아간의 장외 갈등 또한 회의 분위기를 흐리는 악재로 작용했다. 안와르 이브라함 말레이시아 전부총리에 대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의 정치적 탄압을 직설적으로 거론한 앨 고어 미부통령의 언급으로 야기된 미국과 아시아국들의 감정적 충돌은 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내년으로 창설 10년을 맞게 되는 APEC의 이같은 불협화음은 근본적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아시아와 미국을 뒤섞은 회원국 구성의 이질성 때문에 창설 당시부터 어느정도 예견됐다. 이합집산을 한 데 묶어냈던 아시아국들의 비약적 발전이라는 토양이 역내 금융위기로 붕괴되자 갈등 요인은 본격적으로 노출된 것이다.
APEC은 차기 회의까지 정상선언 등 합의의 구속력 확보 방안 및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 등을 모색함으로써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야기된 회원국간 갈등 등 이번 회의에서 불거진 각국의 이해 차이가 해소되지 않는 한 확고한 지역결집체를 향한 APEC의 앞길은 장밋빛이라고 말할 수 없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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