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안기부(구 중앙정보부)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73년 10월 조사중 7층 화장실에서 투신 자살한 것으로 당국이 밝힌 전 서울 법대 최종길 교수의 사인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중정간부인 동생의 안내로 중정을 찾은 최교수와는 달리 대다수의 피조사인들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조차 모른 채 도착해서야 이 곳이 그 유명한 안기부 조사실이구나 하고 자신에게 닥칠 조사 강도에 몸을 떨게 됐다.■SBS TV가 17일 저녁 방영한 「최종길 교수 의문의 죽음 그리고 25년」은 우리나라 의문사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최교수의 죽음을 재조명하고 있다. 두 사람의 수사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실 변기통에 올라가 뛰어 내렸다는 당시 중정의 설명은 소가 들어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소극(笑劇)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실에 들어가면서부터 피조사자들은 몸수색에서 부터 혁대 넥타이 등 흉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영치시킨다. 심지어 조사실 사방 벽은 자해행위를 우려해서인지 두툼한 코르크벽이다. 머리를 부딪쳐 봐야 자해가 안된다.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최교수 사인이 고문에 의한 치사라고 주장한다.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원으로 한국근무를 했던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는 증언을 통해 『당시 중정에는 북한에 관심을 가진 자가 별로 없었다』며 『나의 한국근무 경험중 최악의 사건』이라고 역시 사인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레그 대사의 이 말은 공산당을 때려 잡아야 할 중정이 본업은 제쳐둔채 박정희의 영구집권 유지를 위해 매달렸다는 중요한 증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법률적 시효 타령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당시의 중정부장과 수사책임자가 살아있을 때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 존경받는 한 법학자가 유신을 반대했다고 간첩죄 누명을 쓴채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면 이는 시효타령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진실규명엔 시효가 없어야 한다. 백마디 인권개선 약속보다 한 건의 의문사 진상을 밝히는 게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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