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끌어온 통합방송법 제정이 다시 표류하고 있다. 국민회의가 갑자기 통합방송법안의 국회상정을 유보키로 결정함으로써 방송계에 산적한 현안의 해결이 내년까지 미뤄질 전망이다. 현재 방송계에는 방송위원회의 위상정립을 통한 방송개혁과 케이블TV와 중계유선방송의 갈등해소, 대기업·외국자본의 위성방송 참여문제 등 시급한 문제들이 쌓여 있다.국민회의는 『관련부처와 업계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고 방송정책 전반에 걸친 파행과 난맥상에 대한 진단이 시급하므로 장기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법안상정을 보류키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방송법 시안을 내놓고 수차례의 토론회·공청회를 열면서 연내 입법을 다짐해온 국민회의가 이제와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자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방송계는 관련업계의 불만과 매체별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통합방송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안상정 유보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간 논란의 핵심이었던 새 방송위원회의 출범이 늦어진다는 점이다. 방송행정기구로서 위상을 높여 재구성될 이 방송위에는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 공정성·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대가 걸려 있다. 또한 방송위는 방송매체 전반에 걸친 거시적 정책수립, 인·허가, 방송심의기구로 구상돼온 만큼 법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국민회의는 지난 8월 제시한 방송법 시안에서 당초 보장했던 방송위의 「독립성」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방송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번 법안상정 유보를 놓고 일부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마음이 바뀌어 방송을 독립시켜 줄 의사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점을 국민회의는 유념해야 한다.
공중파 방송의 경우 올 연말까지 1,8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며 지역민방과 케이블TV도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몇년째 본격방송 준비만 해온 위성방송은 헛바퀴를 돌고 있다. 특히 인수합병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던 케이블TV업계는 법제정 지연으로 규제완화가 늦춰져 고사 직전의 경영난에서 당분간 빠져나오기 어렵게 됐다.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사와의 합작이 추진되던 위성방송사업에서는 대외신인도 하락마저 우려하게 됐다.
그간 여러차례의 토론회·공청회를 통해 관련부처와 업계 등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대부분 드러났고 문제점도 거의 파악이 된 지금 통합방송법 제정을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국민회의는 법안상정 유보결정을 재고해야 한다. 먼저 통합방송법을 제정한 후 미비점을 보완해 가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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