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 “민주화운동은 용기있는 외침” 직격탄/말聯 정국 개입 시작… 마하티르 “무례” 발끈마하티르 모하마드(72) 말레이시아 총리가 느닷없이 앨 고어 미 부통령에게 뺨을 얻어맞았다. 그것도 안방에서. 미국은 말레이시아의 민주화 개혁시위를 지지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혔다.
이라크사태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대신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앨 고어 부통령은 정상회의 하루 전인 16일 세계 재계 지도자들과의 만찬석상에서 말레이시아 민주화운동을 「용기있는 외침」이라고 지지하고 마하티르 총리의 17년 장기집권에 직격탄을 날렸다. 고어 부통령은 마하티르 총리가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가운데 『미국은 용감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개혁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고 연설했다. 그는 반정부 시위대가 구호로 쓰는 「레포르마시(개혁)」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고어 부통령은 나아가 『태국과 한국, 동유럽과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유를 억압받는 국가들보다 경제위기에 더 훌륭하게 대처해왔다』고 마하티르 정부의 경제정책을 직접 겨냥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즉각 고어 부통령의 발언을 『유례없는 무례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방했다. 라피다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장관도 『일생동안 들어 본 연설 가운데 가장 혐오스런 내용』이라고 비난, 양국의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미국은 그동안 마하티르에게 내심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었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서방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외환통제 등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펴는 데다 개혁파인 안와르 이브라힘 전부총리를 구속한 데 따른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APEC에 참석하더라도 마하티르 총리와 개별회담을 갖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이번 회담 기간중 안와르 전부총리의 부인 아지자 이스마일여사를 만나 안와르의 공정한 재판을 강조, 미국의 압력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고어 부통령의 발언은 민주화와 인권을 강조해 온 클린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말레이시아 정국에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한 것이다.<김혁 기자>김혁>
◎안와르사태 전말/마하티르에 반기로 구속/고문의혹 인권문제 부상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9월초 안와르 이브라힘(52)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후계자로 키워 온 안와르가 자신의 경제위기 해법에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데 격분한 것이다. 마하티르는 위기의 원인이 서방의 투기성 자금 탓이라며 고정환율제 도입, 자국화폐의 외국거래 금지 등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반면 「국내 경제의 취약성이 더 큰 문제」라고 진단한 안와르는 고금리와 긴축재정 등 국제통화기금(IMF)식 개혁 정책을 주장해 왔다.
마하티르는 안와르가 해임된 뒤에도 자신을 계속 비판하자, 부패와 남색(男色) 등 10가지 혐의를 걸어 그를 구속했다. 국내 정치 현안이던 「안와르 문제」는 그가 9월 29일 눈자위에 피멍이 든 모습으로 법정에 출두하면서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다.
마하티르의 경제정책과 독선적인 정국 운영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미국 등 서방측은 안와르에 대한 고문의혹 해소를 촉구하며,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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