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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막전막후(격변 IMF 1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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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막전막후(격변 IMF 1년:2)

입력
1998.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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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협상론’ 뭇매 뒤늦게 전면 수정/고금리·재정긴축 초기 IMF강압에/‘가혹’ 주장 묻힌채 경제난 가중/국민생활 만신창이 8개월뒤/금리인하·정책완화 등 180도 선회7개월여만에 거대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재협상론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완전히 수용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 재협상론이 정치적 이슈로서 활활 타오를 때 「소수의견」에 불과했고 불난 집에 물이 아니라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취급을 받았던 재협상론은 이로써 완전 복권했다. 대신 당시 당당했던 재협상 불가론은 꼬리를 감췄다. 이제 누구도 재협상 불가론을 입에 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사실도 드러내길 원치 않고 있다. 논쟁의 시시비비는 논리가 아니라 현실의 추이가 판가름함을 나타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IMF체제이후 한동안 국제금융시장 일각에선 IMF요구에 한국처럼 순응한 나라는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대량실업과 연쇄부도로 피가 마르고 살이 타 들어가는데도 『IMF처방은 입에 쓴 양약』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경제국치일로 불렸던 지난해 12월3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가 총독처럼 다가왔다. 9개 종합금융사 폐쇄, 2개 시중은행의 정리,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 여전히 부족하다는 듯 그는 3당 대선후보의 각서를 요구했다.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IMF와 협의된 내용을 원칙적으로 이행할 것입니다. 다만 협의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행함에 있어 계속적인 논의와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을 통해 급격한 경기후퇴에 따른 대량부도·대량실업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것입니다』(김대중·金大中 후보)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동 협의내용을 협의된대로 이행할 것입니다』(이회창·李會昌 이인제·李仁濟 후보)

미소를 머금은 캉드쉬 총재는 『불행으로 가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며 IMF처방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한국경제를 회생시키는 보약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앞서 간호사출신의 캉드쉬부인은 주한 외국대사 오찬모임에 참석, 『약이 중요하지만 환자가 그 약을 먹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한국인의 반발을 의식한 탓일까. 이후 10여일간 IMF 재협상론이 「핫이슈」로 부상했다.

협상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재협상론이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은행들은 종금사의 영업정지로 콜자금 공급을 꺼렸고, 종금사들은 생존을 위해 무차별 여신회수에 나섰다. 금리는 폭등하고, 환율도 연일 상승제한폭까지 오르며 거래가 중단됐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공개되면서 외국투자자들의 탈출은 러시를 이뤘다. 『감성적인 재협상논의로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있다. IMF가 자금지원도 꺼리고 있다』 재협상론자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 재협상이 가능한지, IMF처방이 적정한 것인지, 금융시장 불안이 재협상론 때문인지 등은 논외였다. 대선바람에 관료도 전문가도 방향을 잃었다.

『사자가 사슴을 먹겠다고 달려들면 사슴 한마리가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차동세·車東世 당시 한국개발연구원장) 『IMF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신뢰회복의 열쇠는 IMF와 합의된 경제 조정정책의 착실한 시행에 있다』(양수길·楊秀吉 당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이봉서(李鳳瑞) 전 아시아개발은행(ADB)부총재, 김중웅(金重雄) 현대경제연구원장, 이한구(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장, 최우석(崔禹錫) 삼성경제연구소장, 공병호(孔柄淏) 자유기업센터소장, 강병호(姜柄晧) 한양대 교수, 심상달(沈相達) KDI 연구위원 등도 유사한 논지를 폈다.

IMF 처방이 잘못됐다는 제프리삭스 교수의 비판이나, 냉정을 되찾자는 김성훈(金成勳) 중앙대부총장(현 농림부장관), IMF 처방을 고치기 위해 5자협의체를 구성하자는 박영철(朴英哲) 금융연구원장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대선이 끝나고 IMF와의 합의이행을 약속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IMF처방이 너무 가혹하다』는 진단이 봇물을 이뤘다. 캉드쉬총재가 『재협상요구는 금융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며 재협상론자를 공박했던 조순(趙淳) 전 한나라당 총재도 3월 재협의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IMF사태를 놓고 국제자본의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고금리와 재정긴축을 골자로 IMF의 초기 처방은 7월 180도 수정됐다. IMF는 적자재정 편성에 세금인하까지 요구했다.

『의사가 수술대에 오른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메스를 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평범한 상식을 떠올리기까지 수만개의 기업이, 150만명의 실업자가 거리에 나 앉았다. 초기대응을 잘했더라면 불필요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정희경 기자>

◎지난 1년간 IMF의 태도변화/‘총독’서 자문관으로/자신만만 고강도처방/되레 실물경제 치명타/5월부터 상황 재인식/구조조정빼곤 불간섭

「한국경제의 총독(總督)에서 자문관으로…」 지난 1년간 점철돼 온 국제통화기금(IMF)의 태도변화는 바로 한국경제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3일. 임창렬(林昌烈) 당시 경제부총리와 구제금융지원안에 서명한 미셸 캉드쉬 IMF총재의 웃음뒤에는 가혹한 IMF처방이 숨어있었다.

구제금융지원안 발표와 함께 나온 1차의향서의 골자는 「금리상승 용인, 콜금리(금융기관간 단기 차입금리) 연 24%, 재정수지 균형 또는 소폭 흑자」로 요약된다. 고금리, 긴축정책을 통해 외국자본 유출을 막고 정부와 민간의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해 한국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한국경제는 곳곳에 피멍이 들고,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제프리 삭스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교수를 비롯한 석학들이 IMF처방의 문제점을 잇따라 지적했으나, IMF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IMF처방은 올들어도 이어져 1월의 3차의향서에서는 「콜금리 30%수준 유지」를 명문화해 시중의 고금리와 금융경색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IMF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5월부터. 이때부터 외환시장안정이라는 조건을 달아 금리인하정책에 적극 동의하기 시작했고, 7월 6차의향서에는 금리정책과 통화정책을 정부에 사실상 일임하는 등 자문관으로 내려앉았다. 고금리·긴축정책을 지속할 경우 한국경제의 생산 투자 소비 등 실물부문이 회생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9월 공개된 내부 보고서를 통해 『IMF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처방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 하지 못한 결과』라는 자아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16일 발표된 7차의향서의 골자는 「저금리정책 지속, 재정적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내년중 플러스 성장」. IMF초기의 처방과는 정반대다.

IMF는 이제 공포의 감독관에서 한국경제의 후견인으로 모습을 바꿨다. 구조조정 이외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뚜렷하다. 그러나 이는 한국경제가 IMF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통해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김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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