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분쟁이나 외교에서 「브링크먼십(brinkmanship)」이라는 단어가 가끔 쓰인다. 「브링크(brink)」는 벼랑이나 물가의 가장자리를 뜻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브링크먼십」은 「위기적인 상황을 조성해 인내의 한계까지 몰고 나가면서 사태를 유리하게 전개하는 기술이나 정책」이라고 사전에 설명돼 있다. 우리말로는 「벼랑끝 전술」 「위기 전술」등으로 번역된다.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심리라고 할 수 있다. 「배수의 진」이니 「마지노 선」이니 하는 것과는 수세(守勢)적 상황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술적 측면에서는 조금 다르다. 후자가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비장한 자기 각오에서 나오는 적극적 공세전환의 의미라면, 전자는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남의 처분에 목을 내맡기는 도박이다.
싸움을 할 때 『배째라』며 땅바닥에 드러눕는 막가파처럼 황당하고 무서운 사람이 없다. 이들은 상대가 자신의 목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상대의 허점을 노리면서 어떻게 나오는 가를 살핀다. 위세에 놀란 상대가 『상종할 놈이 못된다』며 물러서든지, 아니면 사탕을 주며 달래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브링크먼십을 생존전략에 가장 잘 이용했고 지금도 써먹는 대표적인 나라는 바로 북한과 이라크다. 북한은 서방의 핵개발 저지 압력에 특별사찰 거부,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로 맞섰다. 강수에 초강수로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도 밑질 것 없는 원상회복을 조건으로 94년 10월 북미고위급회담을 통해 결국 연락사무소 교환설치라는 정치적 이득과 경수로 건설지원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럼 위기는 끝났는가? 아니다. 북한은 아직도 벼랑 끝에서 걸어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중단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지하시설의 핵개발의혹을 일으켜 또 다른 반대급부를 노리고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그들은 미국의 선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91년 걸프전 이래 계속되고 있는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유엔 사찰단의 추방, 사찰거부 등 수시로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은 그동안 네차례나 대규모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지만 아무 것도 나아진 게 없다. 이번에도 후세인은 일방적으로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부, 미국의 대응을 살피다 미국이 의외로 강경하게 나오자 H 아워 한 시간 전에 사찰 재개를 발표했다. 기세등등했던 미국은 결국 공습을 연기했고 「닭쫓던 개」처럼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미국 「토마호크 외교」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전리품이 없는 승리에 불과하다. 전투기와 함정 병력을 움직이느라 수십억달러만 썼을 뿐이다. 미국은 괴롭다. 상대방의 저의나 노림수를 잘 알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나 효과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를 못 본 척 하자니 무기력하다는 비난을 들을 테고, 상대해봤자 일시적인 원상회복 말고는 본전 찾기도 어렵다. 경제 압박을 가중할수록 상대방의 국민들은 굶어 죽어간다.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상대의 정권을 전복시키거나 그 지도자를 살해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공습연기 결정 후 『고양이와 쥐 게임에 지쳤다』고 실토했다. 「톰」은 늘 「제리」한테 당한다. 그게 지금 이라크와 북한을 다루는 초슈퍼파워 미국의 딜레마이자 현실이다. 미국의 인내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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