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찰재개 서한’ 일축 강경 계속/러·佛·中 등 “응징반대” 선회에 당황/“완벽한 항복” 요구 공격명분 쌓기 온힘미국은 『우리의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여전히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준비하고 있다. 백악관은 14일 이라크가 유엔무기사찰을 재개하겠다는 서한을 보낸 데 대해 『또다른 거짓을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이라크의 「완벽한 항복」을 요구했다. 미국은 국제여론을 의식, 일단 공격을 연기했으나 후세인 대통령의 굴복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군사작전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아래 막판 명분쌓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샌디 버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날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재한 국가안보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후세인은 수차례에 걸쳐 자신이 한 약속을 깨왔고 지금도 또다시 기만술책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버거 보좌관은 『이라크의 서한 내용은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무조건적 사찰수락과는 다르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백악관측은 이라크가 유엔에 보낸 서한에 첨부된 부록문서에 ▲사찰의 조속한 종결 ▲사찰종결 이전 이라크 제제해제 ▲유엔사찰단(UNSCOM)의 재구성 등 조건을 달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의 서한 제출로 인한 국제사회의 달라진 분위기에 적지않이 당황해하는 눈치이다. 이날 긴급 소집된 유엔안보리에서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3개 상임이사국은 이라크의 제의를 무조건적인 사찰수락으로 간주, 미국의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도 『이라크 사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이라크의 서한 제출은 그 첫 단계』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미국의 입장을 가장 지지해 온 영국만이 태도를 변치않고 있으나 미국으로서는 공격에 앞서 이같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때문에 13일 밤 이라크에 대한 공격명령 문서에 서명한 뒤 14일 저녁 말레이시아로 떠나려했던 클린턴은 일정을 변경, 워싱턴에 주저앉게 됐다. 백악관측은 『대통령이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연락체계나 지휘통솔에는 문제가 없지만 안보관련 참모들과 보다 긴밀하고 신속한 논의를 위해 백악관에 있는 게 낫다』고 밝혔다.
그러나 클린턴이 백악관에 남아 앞으로 며칠동안 해야할 일은 주요국 정상들을 설득하는 일일 것이다. 현재 클린턴에게는 후세인과의 지리한 외교적 소모전을 피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으면서 이라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에 군사적 타격을 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인 것처럼 보인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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