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하기가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다. 우선 환율이 1,300원 대로 올랐기 때문에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1년전, 환율 800원대 시절에 비해 60% 이상 늘어났다. 같은 수출을 하고도 벌어들이는 돈이 이렇게 확 늘어나버리니 수출에 이 이상 좋은 자극제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수출이 급해도 환율을 일거에 이렇게 대폭 올린다는 것은 평소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데 IMF 사태가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으니 수출하는 사람들에게는 IMF가 오히려 톡톡히 효자노릇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환율 못지 않게 수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임금인데 그 임금도 IMF 이후 대부분의 직장에서 동결되거나 깎여버렸다. 원화기준으로 보면 그냥 동결이나 얼마간의 삭감 정도에 불과하지만 달러 기준으로 보면 IMF 이전에 비해 임금수준이 절반이하로 푹 내려가버렸다. 수출경쟁력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 요소인 임금이 갑자기 절반이하로 내려가버렸으니 이것 또한 두번 다시 갖기 어려운 유리한 조건이다. 땅값도 엄청나게 하락했고 금리도 최근들어서는 한자릿수를 향해 접근해가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 국가경쟁력이 약한 것을 한탄하면서 해결불가능한 고질(痼疾)이라고 입을 모아 걱정들을 했던 이른바 고비용구조가 IMF 덕분으로 단번에 박살이 나버린 상황이다. 고임금고금리고지가등 수출경쟁력의 족쇄가 됐던 고비용구조가 이렇게 깨져버리고 환율까지 대폭 올랐으니 수출을 위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호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을 못하겠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아대며 뒤로 나자빠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주력시장인 동남아가 엉망이고 세계경기도 안좋다며 밖에다 핑계를 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면 7년동안 호황이었던 미국시장에는 우리가 수출을 얼마나 늘렸는지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40년 가까이 수출을 해오면서 한번도 마이너스 기록을 낸 적이 없는데 그 40년동안 바깥 사정이 항상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비가 올 때도 있었고 태풍이 불 때도 있었지만 수출은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었다.
이제는 IMF 사태의 충격과 혼란이 어느정도 마무리돼가는 상황이고 위기돌파를 위한 적극적이고도 공격적인 목표가 제시돼야 하는 국면이다. 1,500억 달러가 넘는 거대한 외채를 걸머진채 수출이 아니면 살길이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는 나라가 사상 유례없는 유리한 수출환경을 맞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사상 최악의 수출부진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달러가 모자라서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위기까지 겪었고 당장 내년에만도 갚아야 할 외채원리금이 원금 310억달러에 이자 90억달러를 합해 400억달러(한은 추정)나 되는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다 갚아 나갈지, 또 에너지 수입에 들어가는 270억 달러와 식량수입에 들어가는 70억 달러의 생돈은 어떻게 조달해 낼지 생각을 해보면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출비상을 걸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난리법석을 쳐도 시원찮을 노릇인데 정부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태연하고 무심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종합상사를 앞세워 실어내기나 하고 숫자나 맞추는 옛날 방식의 수출캠페인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세계 방방곡곡을 뒤지면서 숨어있는 틈새시장을 찾아내고 꾸준하게 새상품을 개발해서 작은 것이라도 알뜰하게 긁어모아 수출할 궁리를 하는 열성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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