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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자’로서의 국가/尹永寬 서울대교수·국제정치경제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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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자’로서의 국가/尹永寬 서울대교수·국제정치경제학(한국논단)

입력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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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들르는 나물을 잘하는 음식점이 있다. 그런데 그 음식점에서 20m도 안 떨어진 빌딩 1층에 똑같은 상호를 가진 음식점이 있었다. 이상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원래 자기들이 그 빌딩에 세들어서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되자 빌딩주인이 자기들을 내쫓고 같은 상호로 음식점을 열었다는 것이었다. 고생해서 신상품을 개발해낸 중소업자의 아이디어가 힘센 기업들에 빼앗기다시피 하고,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다. 심지어는 정부기관이 한글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품을 사용하고 국세청 고위직에 있던 사람이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마디로 경제질서의 무정부 상태가 우리의 현실이다.경제의 질서가 서지 않고 정당한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경제주체들은 창의력을 발휘해 노하우나 기술을 개발하거나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경우,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느 외국인 학자가 이야기하듯 저급한 동원경제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러면 누가 경제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결국 국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국가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추진해온 과정에서 경제질서를 엄정하게 집행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했다. 특히 70년대 이후 「규모의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자동차, 철강, 화학등 중화학 공업을 육성해왔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덩치가 큰 상품을 만들어 수출을 해야 남는 것도 많다는 논리였다. 그런 상품을 만들어 낼 공장은 엄청난 자본투자가 필요하고 수익을 회수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길었다. 그래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은 대기업들에 은행 돈도 몰아주고, 세금도 감면해 주고 하면서 이 분야에 투자를 유도했다.

그 결과 우리는 고속 성장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 방식은 경제구조의 질적인 왜곡을 초래했고, 그 비용을 우리는 IMF위기로 지불하고 있다. 중화학공업 부문에서의 과잉, 중복 투자가 부실채권을 낳았고, 부실채권을 매개로 나라경제는 은행과 대기업의 포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라는 것도 나라경제가 「규모의 포로」가 되어버렸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정부가 대기업들에 편파적인 혜택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에 대하여 경제활동의 규칙을 엄정하게 집행해 나가야 할 권위와 위상을 잃게 된 것이었다. 결국 십여년 동안 구조조정과 재벌개혁, 정의 사회를 외쳐왔어도 말뿐이었고, 노동자와 중소기업과 국민들은 국가를 불신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볼때 장기적으로 정의와 효율은 상치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박전대통령이 그같은 열성을 가지고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중소기업, 노동자, 대기업등 간의 균형을 맞추어가면서 차분하게 발전전략을 추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만처럼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고 효율적인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IMF위기로 몇 달만에 1만달러에서 6,000달러 소득으로 떨어지는 수모도 겪지 않았을 지 모른다.

또한 국가가 경제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신화이다. 물론 경제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규제와 간섭」은 뒤로 빠져야 한다. 그러나 공정하게 경제라는 게임의 규칙을 집행하는 「심판자」의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강화되어야 한다. 효율적인 시장경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위해 백여년 전부터 셔먼 법(Sherman Act)을 제정하고, 엄청난 공권력을 행사하여 반독점과 공정거래의 규칙을 지켜온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시장논리를 강조하고 미국을 모델로 이야기하는 일부 논객들이 미국의 반독점법의 오랜 전통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어떻게 「심판자」로서의 국가의 위상을 되찾느냐가 IMF위기의 최대의 교훈이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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