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병원 의사가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동위원소(RI)를 훔쳐 애인관계였던 퇴직 간호사를 해치려 했던 사건은 여러 면에서 충격을 준다. 우선 인술을 펴야 할 의사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치료용 위험물질을 범행도구로 이용하려 한 발상이 놀랍다. 지금까지 방사성 동위원소 도난 및 분실사고는 여러번 있었으나 분명한 범행목적으로 훔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경찰에 붙잡힌 용의자는 변심한 애인에게 보복하려고 암 치료제로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저장실 출입문 자물통을 쇠톱으로 자르고 RI를 훔쳐 애인의 자동차에 실어두었다고 자백했다. 위험한 물질을 가지고 장난치는 어린이들과 다름이 없는 심리상태다.
위험한 물질을 그토록 허술하게 관리한 병원측도 이해가 안된다. 새벽 3시 용의자가 RI 저장실에 접근할 때 누구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삼중으로 설치하게 돼있는 시건장치도 한 곳밖에 돼있지 않아 절취도 쉬웠다. 위험 물질 보관장소에 그 흔한 경보장치나 폐쇄회로 모니터시설도 없다고 하니 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이 간다.
치료용으로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관리의 문제점은 비슷한 사고가 날 때마다 요란하게 강조돼 왔으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88년에도 세슘 10개를 분실했다가 회수한 일이 있었고, 서울대 병원에서도 94년 세슘을 분실해 소동이 났었다. 병원 외에 13개 기관이 RI를 분실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96년 국정감사 때 폭로되기도 했다. 병원 연구소 산업체 등의 방사성 물질 관리자들이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실시되는 과기처 안전검사에서는 100여개 기관이 시정조치를 당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무자격 관리자를 고용한 곳도 많다.
자궁암 치료에 쓰이는 세슘이나, 구강암 경부암 조직에 바늘처럼 찔러넣어 치료하는 이리듐 RI는 성냥개비 반토막 정도의 크기다. 그러나 강한 감마선을 방출하고 있어 납 용기로 차폐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1시간 이상 피폭되면 화상 비슷한 상처가 생겨 암에 걸리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RI를 사용하는 기관은 1,360개이고 이들 기관들이 보관중인 RI는 엄청난 수량이다. 이번 사건은 언제라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특히 방사성 폐기물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횡액을 당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관계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폐기물 정책과 안전관리를 철저히 검색해 주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