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는 것은 정경유착과 생산성 향상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환란으로 초래된 IMF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생산성 향상은 무엇보다 화급한 과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 상황에서 산업전반의 경쟁력 없이는 단 하루도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정이 급박하다. 새정부가 국정의 화두로 각종규제의 철폐를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전 내각에 대해 연말까지 각종규제의 절반이상을 철폐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사회 각분야의 창의성을 옥죄는 이런 규제의 혁파 없이는 산업의 기반도, 국가의 장래도 암담하기 때문이다.정부는 이미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발족, 각종규제 정비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8일 규제위원회가 밝힌 「실적」을 보면 과연 정부에 개혁 의지가 있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놔둔채 건수채우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혁파돼야 할 전문자격사 관련규제나 정경유착 고리로 지탄받아온 기업의 준조세 정비등은 그대로 둔채 이미 사문화했거나 폐지키로 한 사안들을 포함시키는 등 실적 부풀리기 흔적이 뚜렷하다.
규제개혁위가 집계한 25개부처 및 청의 규제철폐 건수를 보면 규제대상 1만1,125건 가운데 5,326건(47.9%)을 철폐하고, 2,441건(21%)을 개선하는 등 모두 7,767건(68.9%)이 정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폐지된 규제중 상당수는 최근 한달새 졸속으로 선정된 것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의 「연말까지 50%선 폐지」지시이후 갑자기 늘어난 수치다. 지난달까지 겨우 20%선에 머물던 일부부처는 한달만에 50%대의 실적을 꿰맞추고 있다.
대통령은 그동안 10여차례나 규제개혁을 강조해왔으나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재량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각장관들의 진두지휘로 규제철폐 건수를 일단 50%이상 올린 것은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건축 소방 위생 보건등 가장 규제완화가 먼저 이뤄져야 할 핵심적 분야가 대부분 내년이후로 정비가 미뤄진 것은 개혁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수도권에 공장하나 짓는데 40여 각종 인허가과정을 거쳐야 하는 나라가 어떻게 국제경쟁에서 이겨 나갈 수 있겠는가. 경제효율성을 높이려는 규제개혁의 근본취지를 정부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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