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났어요,정덕일이 너무 벗었어요”/“이건개 등 고위간부들 연루” 진술에 검찰 발칵/정·관계 겨눈 사정의 칼이 부메랑 될줄이야…/이 고검장 “가만 안있겠다”에 홍 검사 언론에 내용 흘려운명은 돌고 도는 것일까. 정덕일(鄭德日)씨가 검찰에 출두한 93년 5월19일. 정·관계를 매섭게 파고들던 검찰의 칼날은 「부메랑」이 되어 검찰로 돌아왔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말대로 언론에서는 덕일씨의 출두를 계기로 박철언(朴哲彦) 의원 뿐 아니라 현직 고위 검찰간부 3명을 배후세력으로 지목해 이니셜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이니셜이 이건개(李健介·사시 1회·현 자민련의원)대전고검장, 신건(辛建·고시 16회·현 안기부2차장)법무차관, 전재기(全在琪·고시16회) 법무연수원장등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검찰내부와 법조출입기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덕일씨 조사는 비슷한 또래인 은진수(殷辰洙) 검사가 맡았다. 유창종(柳昌宗·현 의정부지청장) 강력부장의 회고. 『어떻게 정씨를 달랬는지 은검사가 오후에 오더니 「다 털어놓겠답니다. 조서를 받을까요」하고 물어와 조서대신 진술서를 받으라고 했어요. 들을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죠. 급한 김에 검찰관련부분을 먼저 조사하라고 했지요』
얼마가 지났을까. 은검사가 검찰간부 3명에 관한 진술서를 들고 부장실로 뛰어왔다. 『어떻게 됐어』『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벗긴 벗었는데 너무 홀딱 벗었습니다』
덕일씨의 진술요지. 「84년부터 이고검장과 고교동문인 J기자를 통해 여러번 만났어요. 88년쯤 서울프라자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이고검장이 「빌라를 매입하려는데 돈이 모자라니 빌려달라」고 해 3차례에 걸쳐 5억4,200만원을 빌려 주었습니다. 조직폭력배 수사로 검찰 내사를 받는 형의 선처를 부탁하는 뜻에서 빌려 준 겁니다…」
유부장의 회고.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더군요. 앞이 캄캄했어요. 일단 진술서를 봉투에 넣으라고 했어요. 내용도 보지 않았죠. 봉투를 들고 그대로 검사장실로 올라갔어요. 자잘한 보고사항이 여러개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군요』
서울지검 6층 검사장실. (유부장) 『저도 안 읽어봤습니다. 총장님께 보고하시죠』
송종의(宋宗義) 검사장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유부장의 기억. 『송검사장은 박철언씨 보고때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는데 검찰간부들에 관한 사항을 보고하니 정말 놀라고 당혹스러워했어요.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송검사장의 회고. 『신차관은 나와 서울법대 동기고 이고검장은 대학동창에다 전임 서울지검장이었어요. 얼마나 곤혹스러웠겠습니까. 숨도 못 쉴 정도였어요. 하지만 어디 덮는다고 덮어질 이야긴가요. 세상에 비밀은 없는데』
잠시후 송검사장이 서소문 대검청사에 있는 박종철(朴鍾喆) 검찰총장의 전화다이얼을 돌렸다.
(송검사장) 『총장님,확인되었습니다』
건너편 수화기에선 대답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송검사장은 『앞으로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총장의 심정을 헤아렸다.
검찰이 쏜 총알에 검찰이 맞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더욱이 현직 최고위 검찰간부의 수뢰수사는 사상 초유의 일. 검찰로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 박총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은 누워서 침뱉기식인 내부 수사를 피해가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김두희(金斗喜) 법무장관 집에 수뇌부가 모여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나올리 없었다.
하지만 내부문제를 놓고 미적거리던 검찰의 분위기는 5월21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특별지시 한마디로 급변하고 만다. 이날 열린 교정대상수상자 접견에서 YS는 『부정부패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철저한 수사를 김장관에게 지시했다. 김덕룡(金德龍) 정무1장관도 YS의 발언 직후 『대통령은 얼마전 「사정기관에 대한 사정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며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
5월22일은 검찰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은 날이었다. 이날 하루 24시간, 1440분은 아마도 검찰사에 가장 길고 고통스런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의원의 영장이 집행되기 직전인 이날 오후 홍준표(洪準杓) 검사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대검 중수부의 함승희(咸承熙) 검사에게서 『중수부장이 급히 만나자고 한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대검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수뇌부는 일단 수사검사의 의지를 알아보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밀사(密使)」역이 김태정(金泰政·현 검찰총장) 중수부장에게 맡겨진 것. 수뇌부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홍검사는 직감적으로 집히는데가 있었다. 홍검사는 함검사의 전화가 오기직전 동료검사가 해 준 충고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홍검사의 증언. 『한 동료가 「이고검장이 당신을 그냥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고 있다. 언론에 이니셜을 알려준게 당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한다」고 말해주더군요. 고검장이 평검사를 잡아넣겠다니 이젠 검사생활도 끝인가하는 생각도 들고 겁도 덜컥 났어요』
우연일까. 홍검사가 막 사무실을 나가려는데 평소 친분있던 기자가 사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가도 됩니까』
일순간 섬광이 홍검사의 머리를 스쳐갔다. 「초임시절부터 위기때마다 나를 구해 주었던 언론 아닌가」. 홍검사는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잘 들어요. 이건개 고검장이 걸렸어요. 액수는 수억대요. 기사를 쓰면 특종이오』
홍검사의 최후의 도박이 시작됐다. 「적이 죽지않으면 내가 죽는」 생존을 건 게임이었다. 저녁 무렵 서소문 대검청사 근처 일식집. 김중수부장과 홍검사가 마주 앉았다.
(홍검사) 『선배님, 이건 해야 합니다. 여기서 끝내면 나는 정권의 용병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쓸 겁니다. 대검에서 반대한다면 사표를 내고 누가 수사를 막았는지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홍검사의 회고. 『중수부장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주임검사의 의견이 그렇다면 존중하겠다. 내가 총대를 메지」하더군요. 그리곤 나의 의견을 대검에서 적극 밀어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김중수부장은 슬롯머신사건이후 사석에서 『당시 홍검사를 보니 완전히 눈이 뒤집혀 있었다』며 『막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회고했다. 그러나 사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홍검사가 흘려준 이고검장의 수사사실은 미리나온 다음날 신문 가판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대검이 발칵 뒤집힌 것은 자명한 일. 송검사장에게 박총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수사보안이 어떻게 된 건가. 당장 우리집으로 와』
밤 10시쯤 됐을까. 박총장, 김도언(金道彦) 대검차장, 송검사장, 김 중수부장등 4명이 동교동 박총장의 자택에 모였다. 이른바 대책회의. 천근 바위덩어리같이 무거운 분위기가 방안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박총장은 여전히 미온적이었다.
송검사장이 질식할듯한 분위기를 깨며 벌떡 일어섰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사표를 내겠습니다』
후다닥. 김중수부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따라 일어섰다. 『송선배, 비겁하게 왜 그럽니까. 지금 이 자리는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지 책임소재 가리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송검사장의 서리발이 누그러졌다. 난상토론 끝에 「공개수사」로 결론이 났다. 홍검사의 사표협박과 언론플레이, 송검사장의 「결기」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회의가 끝난 후 김중수부장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정면돌파가 결정됐다면 정씨 형제의 진술을 확실하게 받아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의 변호인이었던 송기방(宋基方) 변호사의 기억. 『밤 11시30분 쯤 김중수부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빠른 시간내에 확실히 이야기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정덕일씨가 머리가 좋아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애매모호하게 한 탓이었어요. 덕일씨의 진술이 검찰입장에선 동그라미가 아니라 세모였던 거에요』
송변호사는 즉시 특조실에서 정덕진씨를 면회, 검찰의 주문을 전했다. 『태풍을 피할 방법이 없어요. 맞을 수 밖에 없다면 동생이라도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덕일씨도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래 놓고 구속시키면 그 땐 어떻게 하죠』 송변호사의 잇딴 설득. 『어차피 거절하면 구속이야. 원하는 대로 해줄 수 밖에…』 덕일씨는 검찰의 최후통첩에 백기를 들었다.<이태희 기자>이태희>
◎정덕일 구속파문/수사과정 서울지검대검 갈등/홍 검사 “불구속” 약속 불구/검찰총장 “구속하라” 명령
정덕일 구속 파동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슬롯머신 사건의 비화중 하나.
수사팀의 잇따른 돌출행동으로 빚어진 서울지검과 대검의 갈등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밤껍질처럼 벌어지고 말았다. 홍검사가 정씨형제와 한 「정덕일 불구속」약속이 화근이었다. 이른바 「플리바겐(Plea Bargain)」.
정덕일씨의 「메가톤급 진술」이 보고된 다음날인 93년 5월20일 박종철 검찰총장이 은밀히 송종의 검사장을 대검으로 불렀다. 『정덕일이를 구속합시다』
송검사장으로선 예기치 못한 주문이었다. 『예?』
서울지검으로 돌아온 송검사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물었다. 홍검사의 반발은 거셌다. 『검사는 살인자와 한 약속도 지켜야 합니다. 덕일이가 들어올 때 불구속 약속을 했는데 그건 인간적인 배신입니다. 제가 사표를 내겠습니다』
송검사장이 다시 대검에 수사팀의 의견을 전했다. 박총장이 답답한 듯 화를 냈다. 『총장이 하라는데 무슨 말이 그리많나. 이건 직무명령이야』
「하나(조직)를 위한 전부(검찰), 전부를 위한 하나」격으로 검찰을 대표하는 총장의 직무명령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조직의 명령」이었고,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실정법인 검찰청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유부장의 증언. 『송검사장은 총장이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니 자신이 사표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했어요. 나는 타협안으로 나를 징계해 달라고 건의했어요. 수사지휘책임을 물어 부장인 나를 문책 발령하고 후임부장이 와서 일을 처리하면 총장에게도 명분이 생기고 수사팀은 약속을 지키는 것 아니냐고 말했어요. 그래야 조직에 체통도 서니까요. 그랬더니 송검사장이 「이놈들아, 사표는 내가 내야지 너희들이 왜 당하냐」며 한마디로 잘랐어요. 그러더니 정말 사표를 써서 대검으로 가더군요』
그러나 송검사장의 사표는 『서울고검장을 경유하라』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붙여 반려되고 다시 김유후(金有厚) 서울고검장에게 제출된 사표는 책상서랍 속에 들어간 뒤 소식이 없었다.
박총장은 왜 정덕일을 구속하라고 했을까. 홍검사의 이야기. 『수사협조자는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이 있지 않습니까. 수뇌부가 수사팀의 의견을 무시하고 굳이 구속해야 한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정덕일을 구속해 입을 막으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었어요. 내부수사로 번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당시 검찰간부들과 수사관계자들조차 홍검사와는 다른 주석을 단다. 김도언(金道彦·현 한나라당의원) 당시 대검차장의 이야기. 『그건 순수한 수사상의 필요에 따른 의견차이였어요. 정덕일은 죄질로 볼 때 구속해야 마땅했죠. 언론에서도 정덕일의 구속 여론이 높았어요. 수사팀으로선 정덕일이 입을 닫으면 큰일이니 반대했구요. 그밖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흘러나오지만 다 잘못된 겁니다』
당시 대검 간부회의에 참석했던 검찰간부의 이야기. 『이미 검찰간부 수사는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뱉어버린 말을 담을 수가 있나요. 서울지검에서 보고도 안하고 진술 먼저 덜컥 받아놓은 상태였으니까요. 대검에선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덕일씨를 구속해 뒷거래를 했다는 뒷말이 없게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의 증언. 『위에서는 정덕일이가 미웠을 거에요.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겠죠. 윗분들의 깊은 뜻은 알수 없지만 조직을 짓밟아버린 정덕일을 혼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피의자와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지켜야지요. 수사기관의 도덕성과도 연결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홍검사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미봉책으로 막아질 상황은 아니었어요』
송종의 검사장은 이에대해 『나는 사실만 이야기 할 뿐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종철 총장은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이야기 하기 싫다』며 답변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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