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에서 추진되던 사법시험 정원감축 움직임이 국회에서 문제가 됐다. 5일 국회 법사위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변호사 겸업의원들은 여야 구분 없이 합격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반의원들은 원래 계획대로 증원해야 한다고 맞섰다. 정원을 현 수준에서 동결해야 한다는 박상천 법무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 의장이 당으로서는 반대라는 의견을 밝히는등 여당내에서도 혼선이 일고 있다.오래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제기돼 온 사시 정원 감축 주장에는 법조3륜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영장 실질심사제, 법조계 비리수사 등을 둘러싸고 불편한 관계이던 법원과 검찰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법무부와 변협은 물론이고 판·검사 출신 국회의원들까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는 사시정원을 축소 또는 동결하려는 법조계의 집요한 캠페인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법조계는 IMF체제 이후 법률서비스 수요가 크게 줄어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는 사태가 속출하고, 내년에 쏟아져 나올 사법연수원 졸업생들중 상당수가 취업을 못할 형편이라는 업계불황을 이유로 감축론을 제기하고 있다. 김영삼정부 시절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매년 정원을 100명씩 늘리기로 했으나 상황이 달라졌으니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첨단 문명사회의 현실과 국제적 추세를 외면한 직업이기주의의 논리로 볼 수밖에 없다. 변호사 업무는 날이 갈수록 전문화 다기화하는 추세다.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실감나는 국제화·정보화 시대를 맞아 법률서비스의 종류와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전문 법조인의 수요도 같은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3,600명으로 인구 100만명당 133명에 불과하다. 미국은 100만명당 3,296명, 독일은 1,375명, 우리나라와 사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은 150명이다.
변호사가 늘어날수록 서비스 경쟁이 심해져 수임료도 내려가고 법률 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변호사들의 수지 악화나 취업난이 정원감축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시 합격자라고 전원 취업을 보장할 필요도 없다. 시골 군청소재지에는 아직 변호사가 없는 무변촌이 남아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정원감축을 위해 법조3륜이 목청을 높이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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