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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正而國治(金聖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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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正而國治(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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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은 외롭다. 공무원들의 원성(怨聲)에 대항하여 일반 국민들이 격려하는 원성(援聲)은 그 소리에 차단된채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 공무원을 관리하는 수장(首長)이 공무원들에 숲속처럼 포위되었다. 반란인가, 반혁명인가, 공직사회의 밀림은 시끄럽다.김장관은 얼마 전에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공직사회의 고질적 병폐와 뿌리깊은 비민주성을 들추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일선행정기관을 자기비판했다. 이 책은 무사안일, 줄서기, 불친절, 각종 비리에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공무원 사회를 통탄하고 있다. 김장관은 「현직 장관이 자기 조직의 실상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변해야 한다. 공직사회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는 데 이 책이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책이 발간되자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켜 20일만에 5만권이 팔려 나갔다. 그러나 공직사회내에서는 『공무원을 담당하는 장관이 공무원 사회를 비리와 아부와 무능력의 온상으로 까발렸다』는 등의 역공이 쏟아져 나왔다. 부내 직원들 사이에서도 장관을 인신공격까지 하는 성토공세가 이어지자 김장관은 마침내 분노하여 지난 2일 전직원이 참석한 월요조회에서 『공무원들이 자성은 커녕 비난에 혈안이 되고 있다』고 질타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공무원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과 불평은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란 책 이전의 것이고 이상의 것이다. 민원 업무로 한번이라도 관청과 살갗을 비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원망이 어느 정도인가는 바로 그 책에 대한 반응만 보아도 안다. 책이 하루 아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 속에 흥미진진한 기담(奇談)이 있어서도 아니요 쇼킹한 진담(珍談)이 있어서도 아니다. 자신의 분만이 그 속에 담겨있고 공무원의 대표가 대신 분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반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장관이 양심선언한 것도 아니요 치부를 필요이상으로 과장한 것도 아니다. 실상은 실상이다. 공무원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다만 새로운 것은 그런 실상을 소관 장관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어느 장관도 아는 체를 안했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모르기야 했을까마는 적어도 모르는 체 했다.

흔히 부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관은 자기 부처를 잘 감싸주는 장관이다. 이 책에도 쓰였듯이 자기 부처의 예산을 많이 따오고 위상을 높이고 직원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는 부처 이기주의의 능력을 보여야 장관이 점수를 딴다. 그러나 부하들에게 아첨해 자기 부처안에서 인기 있는 장관은 훌륭한 장관이 아니다. 인기 있는 장관이기를 포기한 김장관의 용기는 가상하다. 한 조직의 장(長)이 자기가 속하는 조직과 공개적으로 맞서는 일은, 아무리 그 조직의 장이더라도, 오히려 그 조직의 장일수록 어려운 일이다.

김장관은 공직사회의 개혁에는 엄청난 저항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월요조회에서의 김장관의 질타는 이 저항과의 충돌이다. 암벽과도 같은 거역 앞에서는 장관의 노호(怒號)도 포말처럼 부서져야 옳은가.

물론 착실한 공무원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들은 억울할 것이다. 김장관의 책에서도 「대다수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솔직히 미안한 심정이기도 하다」고 썼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공무원의 명예회복을 위해 인내해야 한다.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저항세력의 돌파에 앞장서야 한다.

관가(官街)는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 나라를 개혁하려면 가장 먼저 관청의 악습이 혁파되지 않으면 안된다. 긴 말이 필요 없다. 官正而國治. 관이 바르면 나라가 절로 다스려진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이 한마디로 족하다. 진창이 굳어지듯 굳어진 관의 악폐 앞에서 장관이 오죽이나 답답하고 분통이 터졌으면 확성기를 대듯 책까지 써서 공개적으로 호소했겠는가. 아무리 장관이라도, 아무리 개혁의 의지가 강하더라도 독력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이 책 속에 있다. 공무원들은 목을 빳빳이 곧추세우고 눈을 흘길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민(民)은 김장관의 외로운 투쟁에 백만의 원군(援軍)이 되어야 한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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