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세계주의를 향하여/이기적 민족주의가 지배한 지난 200년은 투쟁의 역사/이젠 민족경제로는 적응못해/세계로 나가고 세계가 들어와야/현직대통령으론 처음 직접 집필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한국일보 자매지인 코리아 타임스 창간 48주년(11월1일)을 기념해 5일자 코리아 타임스에 「보편적 세계주의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특별기고했다. 김대통령은 기고에서 자유 인권 정의 평화 효율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주의만이 새로운 세계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철학을 피력했다.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이 직접 글을 써 신문에 기고한 것은 처음이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편집자 주>편집자>
21세기는 200여년동안 계속되어 오던 자기중심적 민족주의 시대로부터 보편적 세계주의 시대로 변화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민족주의의 열기가 모든 민족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민족은 있었지만 민족주의는 없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사상과 정치적 이념으로 대두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중요한 방파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세계 모든 민족은 자기민족 단위의 경제를 통해서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민족을 희생하면서라도 자기민족만 잘 살겠다고 이기적인 길을 추구한 것이 소위 선진국에 의한 제국주의였다. 그들은 약소민족을 무자비하게 정복하고 착취했던 것이다. 반면에 약소민족들은 자기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제국주의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지난 200년은 지배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의 양자에 의한 사생결단의 투쟁의 역사였다. 민족주의는 경제발전의 규모와 교통과 통신의 발전이 민족단위로 운영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가능했던 발전단계와 일치해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달라지고 있다. 민족단위의 경제로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없다. 그동안 세계는 교통과 통신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정보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거대한 양의 정보가 순식간에 전세계로 전파된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세계 모든 나라의 정보를 순식간에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단위가 아닌 세계가 하나의 단위가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 이제 각국의 경제 역시 혼자 유지해 나갈 수가 없게 되었고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와 상호 연결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세계무역기구(WTO)체제를 만들어 낸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이제 세계는 수년내에 경제적 국경이 없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어떤 산골의 농촌도 전 세계의 농업과 경쟁해야 하고 조그만 뒷골목의 공장도 전세계의 공장과 경쟁을 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속으로 나가야 되고 세계는 우리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경쟁과 협력이 같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실천할 때만이 각 민족은 세계속에서 뒤처지지 않고 나름대로 생존권을 지키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경제적 시장규모는 민족을 단위로 한 규모로부터 전 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한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의 경제활동은 세계에서 가장 좋고 싼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공급하고 우리 역시 다른 나라의 가장 좋고 가장 싼 물건과 서비스를 도입해서 우리의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국산품 애용이 반드시 애국이 아니다. 국산품도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그러한 국산품은 도태되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문화도 전 세계적인 교류가 시작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이제 문화는 단순히 각 민족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산업이 하나의 기간산업으로서 전세계에 뻗어나가고 있다. 영상산업, 데이터 베이스 산업, 컴퓨터게임 산업 등 문화산업은 커다란 시장규모를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다.
◎“보편적 세계주의는 자유·인권·정의·평화·효율 5大가치를 지향하는 21세기 지구촌의 규범이자 시장경제 움직이는 ‘경쟁’과 시민사회 묶어주는 ‘공생’의 원리 서구·非서구 모두 받아들여야”
정보화 시대, 지식산업 시대, 문화산업 시대 이런 것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세계가 갖는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21세기에 있어서 각 민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영토나 자원이 부의 좋은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자기 민족만이 잘 사는 그러한 이기적인 자세로써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오직 세계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경쟁하고 한편으로는 협력하는 그런 길로 나가야 한다. 민족주의는 배타성과 이기주의로 인정돼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민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도 세계와 하나가 되는 보편적 세계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렇듯 세계적인 문명사적 변화는 지구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보편적 세계주의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는 민족적인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나 이념적인 이유로 분쟁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보편적 세계주의를 지탱해 줄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이 대립과 갈등, 반목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보편적 세계주의 아래서 인류가 수용하고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 자유, 인권, 정의, 평화, 효율 등 다섯가지를 제기하고 싶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그 지평을 보다 확장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서서도 인류는 민주주의의 이름아래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불과 수십개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남유럽, 남미, 동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민주화 물결과 함께 자유와 인권의 신장은 괄목할 만한 것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는 효율의 문제 역시 보편적 가치로서 재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제적 의미에서의 효율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과 제한된 공간속에서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효율의 가치는 중요시 되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21세기를 공존과 공영의 시대로 이끌기 위한 정의와 평화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특히 무한경쟁의 시대 한 가운데 살고 있는 인류로서 21세기의 역사를 「만인대 만인의 투쟁의 시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자유와 인권을 기준으로 한 정의와 공존공영의 기초가 될 평화의 개념들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체계 속에 확고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나는 이러한 보편적 가치들이 21세기 지구촌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경쟁」의 규범이자, 국경을 넘어서 형성되는 지구촌 시민사회를 묶어주는 「공생」의 규범으로 자리잡을 때, 명실 상부한 보편적 세계주의는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원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보편적 세계주의를 뒷받침하는 보편적 가치들을 서구와 비서구 모두 다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만한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기반이 마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세계주의 이념과 상통되는 교리를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종교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 부처님의 우주만물에 대한 자비, 그리고 동양철학에 있어서의 천하태평의 가르침 등이 그것이다.
나는 특히 아시아에서 발전한 유교와 불교의 인과 자비의 정신과 도덕적 규범은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큰 발전을 이룬 자유와 인권의 문제를 보다 심화시켜 나가는데 큰 활력과 자극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렇듯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보편적 세계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살아갈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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