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 있다면 야당탄압 말못해”/“배후 모르겠다며 끝내나” 검찰 질타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3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과 국세청 대선자금 모금사건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공개적으로 추궁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전국 검사장과 가진 오찬에서 두 사건을 각각 『용납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하며, 검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김대통령의 말은 검찰을 독려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를 겨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비록 이총재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김대통령의 언급에는 총격요청사건이 불거진 후 이총재의 자세에 대한 강도높은 불만과 분노가 배어 있다.
김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해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사건의 초점을 흐리는 일은 애국심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이런 강도로 직접 비난한 것은 사정정국이 시작된 뒤 처음이다.
김대통령은 또 두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김대통령은 『야당에 법적 책임이 있는 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해 『안기부에서 자백하고 나중에 (검찰에서) 뒤집어졌다고 한다』며 『연루자들이 자백하고, 기업책임자가 모의를 협의한 사실을 시인했는데, 검찰에서 부인했다는 이유로 배후를 모르겠다며 끝낼 수는 없다』고 검찰을 질타했다.
이날 발언은 정국정상화를 위한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의 물밑협상이 교착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에서 여야 영수회담을 추진하면서 야당측에 이총재의 총격요청, 국세청 모금사건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했었다』면서 『여야의 여러 인사가 중간에 섰지만, 이총재의 거부태도는 완강하다』고 전했다.
당에 협상권을 위임하고 지켜보던 김대통령으로선 인내에 한계가 오고 있다는 의사표시를 한 셈이다. 동시에 김대통령은 두 사건에 대한 수사가 재차 확대될 것임을 시사하면서 이총재에게 『더이상 시기를 놓지지 말라』는 「압박」을 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원칙을 굽히기는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당분간 여야 대치국면도 지속될 전망이다.<유승우 기자>유승우>
◎金 대통령 오찬 발언/“과거 안묻겠다,현재일 충실하라”
『과거를 불문하겠다. 현재 일만 충실히 하라』
김대중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전국 검사장들에게 던진 메시지이다. 김대통령은 『오늘 참석한 검사장들 가운데 과거 나에 대해 편견을 갖고 부정비리가 없는지 살펴보거나 여러가지로 나를 엄중히 다스리려 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한때 오찬장을 긴장감에 빠뜨렸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곧이어 『여러분은 모두 내가 준 발령장을 갖고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결단코 정치보복을 하지 않을테니 염려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 달라』고 당부해 검찰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내가 몇 백억원을 축재했다느니, 좌익이라느니 한 사람들도 한 명도 구속되지 않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과거때문에 현 직책에 충실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특히 『나는 일생동안 한 번 결심하면 20년이고 30년이고 같은 마음으로 일해왔다』면서 『국민이 검·경의 수사를 받을 때 「과연 당신들은 자격이 있느냐」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검찰 등 사정기관이 청렴결백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유승우 기자>유승우>
◎한나라 강력 반발/野 “사실상 수사방향 지시에 경악”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세풍, 총풍사건」 철저수사 지시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야당을 말살하려는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안상수(安商守) 대변인은 『수사중인 사건의 결과를 예단하고 사실상 수사방향을 지시한 대통령의 언행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이는 사건을 야당과 연계시키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안기부의 고문조작과 부풀리기로 왜곡·과장된 총풍사건에 대한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정치·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오히려 여권이 고문조작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되몰아쳤다. 신경식(辛卿植) 사무총장등 당직자들도 『김대통령이 이총재의 행태에 불만을 가진지는 모르나,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야당의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발끈했다.
이와함께 당내에는 『김대통령의 정국운영 구상이 무엇인지 도무지 헷갈린다』는 반응도 적잖이 나왔다. 『얼마전 「11일 중국방문 이전 영수회담도 가능하다」며 정국정상화 의지를 표명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야당을 향해 칼을 뽑아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화전(和戰) 양면 카드로 야당의 혼선과 분란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라고 분석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진땀뺀 검찰,일단 사건 재검토 착수/전면 재수사보다는 배후규명 취지 해석
3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과 국세청 대선자금 모금사건에 대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강도높은 지시가 내려진 직후 검찰은 일단 사건 재검토에 착수했다. 검찰은 그러나 김대통령의 발언이 두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보다는 배후 의혹 등 진실을 철저하게 밝히라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총격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달 26일 중간 수사결과에서도 발표했듯 당시 변호인의 잦은 접견과 고문 피해 주장 등으로 제대로 수사를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대통령의 발언은 아직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만큼 한점 의혹없이 수사하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세풍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도 같은 분위기다. 대선자금 제공기업인 소환조사 등 지금까지 해온 수사를 계속하면서 미국에 도피중인 이석희(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의 귀국을 다각도로 유도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우리가 수사를 안한다고 언급한 적은 한번도 없다』며 『다만 이 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해서는 이씨의 귀국이 필요한만큼 당분간은 관련 기업인들과 이 사건에 개입한 한나라당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정철 기자>박정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