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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에도 봄은 오는가/韓雲史 극작가(한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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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에도 봄은 오는가/韓雲史 극작가(한국시론)

입력
1998.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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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 회장과 소떼 방북 50년 반목·대립 녹여 동해 일출 보는듯 뭉클”정주영(鄭周永)옹과 소 501마리, 현대자동차 20대가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올라가는 TV화면을 보고, 나는 눈시울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공하는 사람도, 용공하는 사람도 다 마찬가지였으리라.

예정했던 날짜가 늦추어지고 다소 불안했던 하루 이틀이 지나더니, 어허, 김정일(金正日)이 정옹의 숙소를 찾아와 금강산개발을 약속하고 서해안의 공업단지 조성에 합의, 또 유전개발에 대한 관심을 교환했다니 이것이 대체 꿈인가 생시인가. 2차대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회가 인다.

장하다는 말이 적합하지 않다. 천지가 일시에 숨을 죽이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해에서 뭉클 솟아오르는 햇살을 보는 것만 같다.

그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가.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아니 너는 나의 원수라고, 형제가 헤어져 서로 윽박지르고 헐뜯으며 흘러버린 50여년….

정옹도 몇 살 아래인 나도,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겪어야만 했던 무수한 고초. 가시밭길이었다. 저주당할 무슨 까닭이 있어 우리가 이렇게 절망의 벼랑에서 있어야만 되는가. 항상 불안에 떨다가 마침내는 자조하고 말았다. 될대로 되라. 될대로 되겠지.

그리고 이렇게 됐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소는 사상이 없다. 차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소에게 또는 차에게 묻고 싶을런지도 모른다. 『어째서 니가 여기 와있니?』 대답이 없다. 하늘을 쳐다보고 말할런지도 모른다. 『세상이 뭐 좀 달라져 가는 겁니까?』 정옹이 이번에 몰고간 소 501마리의 한 마리가 걸작이다.

앞서 보낸 소와 합하면 1,001 마리가 되는데 이 한 마리를 왜 보냈는가. 그 옛날 아버지가 소 한 마리 팔아서 간직한 돈을 실례해가지고 고향을 떠나 온 그 때의 빚을 갚고, 나머지 1,000마리는 이자 조로 준다는 계산인가. 그렇다면 참으로 애교스러운 착상이다.

80노옹의 가슴속에는 무슨 계산이 있는 것일까. 돈벌이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돈보다도 더 큰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다같이 먹고 살아보자. 그런 세상 만들어보자. 우리 민족은 원래 정(情)의 인종이다. 정 가지고 해결 안될 문제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러는 것만 같다.

평양방송이, 노동신문이 정옹과 김정일의 손잡은 장면을 신속하게 보도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북동포 모두가 이제야 남과 북의 관계를 화제로 삼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혁명이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농도 짙은 인식이 곧 혁명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로 다같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합의하면, 그리고 만약에 거기 신바람 나는 무드가 형성된다면 우리 민족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세계가 또 한 번 놀라는 시선을 보내 올 것이 거의 틀림없다.

남은 무력을 행사하여 북을 흡수통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북이 쳐들어올 때 의연히 대응한다는 방어수준이라는 것도 다 들어서 알고있다.

남북통일을 겁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닌가보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우리끼리 전쟁할 까닭이 없는 시대가 된 것같다. 이젠 같이 살아나가자는 생각으로 유대해야 할 뿐이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역사는 우리가 바꾸는 것이지 누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다. 정주영옹은 그 일익을 담당해 준 매우 센 어른이다. 이 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엔 또 봄이 올 것이다.

휴전선에도 봄은 오는가.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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