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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데 목숨건다?/서화숙 문화과학부 차장(여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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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데 목숨건다?/서화숙 문화과학부 차장(여기자 칼럼)

입력
1998.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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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돈내고 버스 타고 다녀요』. 백화점이 밀집한 아파트단지에 가면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백화점마다 경쟁적으로 순회버스를 운행하니까 백화점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다른 곳을 찾아갈 때도 백화점버스를 탄다는 사람들이 많다. 도둑질도 하면 는다고 공짜라는 맛에 자꾸 타다보니 백화점을 이용하는 대가로 탄다는 무언의 약속도 잊게 된다.처음에는 지하철역에 내리면 라면 한 개라도 사서 들고 차에 올라야 마음이 편했는데 점차 제 자가용처럼 느껴진다. 심지어는 이웃 백화점의 쇼핑백을 한 보따리 들고 다른 백화점 순회버스를 타는 주부까지 생겨났다. 백화점으로서는 경쟁사를 위해서까지 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불쾌한 일. 그래서 낸 꾀가 자기네 백화점을 이용한다는 증거­쇼핑백이나 영수증, 문화강좌 수강증이 있는 사람들만 태우는 것이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친구가 목격한 실화다.

순회버스 운전사가 백화점에서 출발하기 전에 버스 문에 서서 일일이 승객을 검사하다 맨몸으로 타는 중년여성을 막았다. 차림새가 점잖은 이 여성은 『백화점에서 옷을 사서 갈아 입은 것이다. 영수증은 잊어버렸다』며 쇼핑을 했다고 강변했다. 운전사는 『차라리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지 그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냈다. 하루 종일 버스를 운행할 때마다 이런 실랑이를 하는데는 정말 질렸다는 것이다.

IMF의 화두가 「절약」 「생존」이다보니 기업이나 개인이나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친구는 안타까워했다. 백화점버스 타고 아끼는 돈이래야 하루 1,000원 안팎이다. 떳떳함과 의연함, 염치, 체면의 값 치고는 너무 싸다. 기업도 그렇다.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고 순회버스를 만들어놓고 사소한 일로 잠재고객을 놓친 셈이다. 인생이고 사업이고 모두 한 치 앞만 바라보고 있다.

혹시 정부정책도 그렇지는 않은가. 당장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해서 수익을 내는 공기업을 외국자본에 파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한 호흡을 가다듬고 우리 모두 길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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