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형님 아우”국감이 초반 난항에서 벗어나 차츰 정돈된 모습을 찾아가고 있으나, 불식돼야 할 구태는 여전히 도처에 널려 있다. 한편으론 닦달하고 다른 한편으론 얻어내는 「공격·로비」병행수법, 자신의 사업이나 지역구 민원과 관련된 집중추궁과 답변 끌어내기, 앞에선 싸우고 뒤에선 시시덕거리는 「한솥밥 우정」, 상대당의 상임위원장 찍기와 물고 늘어지기, 각종 연줄을 동원한 피감기관의 입막음 로비… 욕설과 드잡이가 일과성 해프닝에 가깝다면, 이같은 행태들은 저질발언·폭로성 한건주의와 더불어 뿌리깊은 국감의 병폐에 속한다.
「공격=최선의 로비」는 어느 국감현장에서든 통용되는 기본 등식. 사립학교 이사장인 자민련 K의원은 교육위의 교육부 국감에서 『국가가 사립학교 운영에 간섭해선 안된다』며 학교운영위원회 설립에 반대했다. K의원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유도하기 위해 이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같은 당 소속 의원들로부터도 『자기 이권만 챙긴다』『저런 사람은 상임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건교위의 철도청 국감에선 국민회의 L의원과 자민련 O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민원사업인 철도개발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 눈총을 샀다. 의원들이 피감기관장을 상대로 침을 튀기며 맹공을 퍼붓는 사이, 보좌관과 비서관들은 피감기관의 실무책임자들과 만나 「뒷거래」를 하는 것은 특정 케이스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반화된 관행.
의원들간 속보이는 치고받기도 낯간지럽기는 마찬가지. 건교위 국감에선 상대당 의원을 겨냥, 각종 의혹을 제시하면서 공격의 화살을 날리다가 막상 돌아서면 「형님아우」로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부산시 국감에서 한나라당의 R의원은 익명이긴 하나 누가 들어도 알 정도로 국민회의 모의원을 줄기차게 공격해 놓고선 국감이 끝나자 『형님,속기록 보시면 알겠지만 이름도 전혀 거론하지 않았고 알맹이는 다 뺐습니다』고 「사후보고」를 했다.
법사위의 서울지검 국감에선 하루종일 서슬이 퍼렇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밤 12시30분께 회의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여당의원들과 시시덕거렸으며, 일부 의원들은 검찰 관계자들과 새벽까지 폭탄주를 돌리며 뒤풀이를 하기도 했다. 특히 권력기관을 상대로 한 국감에서 몇몇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은 회의 시작 전 기자들에게 『오늘 국감에선 무슨무슨 건으로 누구누구를 박살내겠다』고 호언해 놓고선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아예 입을 다물거나 꼬리를 내리는 등 「강자에 약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귀경시간에 맞추기 위한 주마간산식 회의는 지방국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망한 풍경. 피감기관을 상대로 한 정책질의 는 밀쳐둔 채 하루종일 쓸데 없는 입씨름만 하다 귀경시간이 가까워지면 모든 질문과 답변을 서면으로 대체한 채 서둘러 국감을 종료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홍희곤 기자>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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