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고 장준하(張俊河)씨에 대한 훈장추서가 끝내 무산됐다. 이번 일의 전말을 보면 우리 행정의 경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초 문화관광부는 한국잡지협회의 추천을 받아 금관문화훈장 추서를 추진했으나 행정자치부와의 협의과정에서 은관으로 격이 낮아졌고, 이 과정을 지켜본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며 수훈을 거부했다. 훈격(勳格)에 대한 부처간 이견을 협의하려던 27일의 국무회의는 서훈건을 상정도 못했고, 31일 잡지의 날로 예정했던 추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장준하씨에게는 91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행자부는 『이번 훈장추서는 「사상계」 발행공적에 국한한 것인데, 잡지분야에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된 전례가 없다』면서 은관을 고집했다. 전례대로라면 신문발행인에게는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돼도 잡지발행인에게는 안된다는 논리다. 「잡지」에 대한 행자부의 문화적 인식도 이해할 수 없고, 「사상계」의 무게를 보더라도 설득력이 약하다.
이념적 갈등과 대립이 혼탁한 와중에서 1953년 그가 창간한 「사상계」는 신생 조국에 자유·민권·문화의식을 뿌리 내리게 함으로써 지성이 반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그 공로로 62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그는 군사정권에 맞서 투쟁하다가 75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잡지에 금관훈장을 준 전례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는 주장은 행정의 경직성뿐 아니라 이 정부의 문화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왜 잡지는 안되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금관훈장 추서를 재추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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