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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들의 혼불/문창재 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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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들의 혼불/문창재 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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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400년전인 1598년 10월 어느날, 일본 가고시마(鹿兒島)반도 서쪽 시마비라(島平) 해안에 한 무리의 조선사람들이 상륙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비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 그들에게는 기다려주는 이도 없었다. 거친 가을바다를 오래 표류하는 동안 굶주림과 멀미에 지친 노약자들은 맥없이 죽어나갔다. 남자들은 풀뿌리를 씹어가며 해변 언덕 아래 초옥을 짓고 황무지를 개간했으나 당장의 생계수단은 되지 못했다.■도자기를 굽지 않고는 살아 갈 방법이 없었다. 엉성하게 가마를 만들고 조국을 떠날 때 가져간 흙과 유약으로 그릇을 구웠다. 「원수나라」의 불로 굽는 것이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이민족 사이에 곧 마찰이 생겨 갈등이 깊어졌다. 일본인들의 습격을 피해 도망치다 자리잡은 곳이 유명한 사쓰마(薩摩)야키의 발상지 미야마(美山)다. 지세가 꼭 남원같다고 「작은 남원」이라 부르며 살아온 곳이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함락된 남원성에서 사쓰마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잡혀간 도공 일가 43명 가운데 심수관(沈壽官)씨의 선조 심당길(沈當吉)도 끼여있었다. 그는 원래 도공이 아니었다. 남원에 기거하던 왕자(李金光)를 호위하던 무관이었다. 그러나 먹고 살려면 그릇을 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박평의(朴平意)란 사람에게서 기술을 배워 훌륭한 도공이 되었다. 외아들로만 이어져오는 후손들도 모두 당대 제일의 도공이 됐다.

■가고시마에서는 사쓰마야키 400년 기념축제가 열리고 있다. 심씨가 19일 남원 교룡산성 산신단에서 채화한 불씨를 봉송해 21일 자신의 가마에 지핀 행사를 시작으로 도자기 마을마다 도자기 축제가 한창이다. 조선 도자기 전래 400년이 되면 선조들의 고난을 위로하는 제를 올려달라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심씨는 오래도록 이 축제를 준비해 왔다. 도공들의 원혼을 달래는 혼불이 400년만에 일본땅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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