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출가가 그린 우리사회 3색 자화상/박상현·조광화·이성열/내달 4일부터 릴레이무대선배가 『무대에 나무가 있어야겠다』고 하면 학교 뒷산의 나무를 뽑고, 그러다 수위아저씨한테 걸리면 『학교 안에서 위치만 옮겼을 뿐』이라고 우기던 80년대 대학연극반. 그들은 그런 연극반 출신이다. 91, 92년 앞서거니 뒤서거니 데뷔를 했다. 30대의 동세대이지만 출신학교, 극단, 작품성향은 제각각이다. 박상현 조광화 이성열씨. 이들이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우리시대의 연극시리즈」에 초청돼 한 자리에 모인다. 올해로 8회째인 「우리시대의…」는 11월4일 개막, 내년 1월17일까지 계속된다.
박상현(37)씨는 서강대 신방과 졸업후 8년간 다니던 직장을 92년 때려치웠다. 「해질녘」의 연출로 데뷔했다. 그 뒤 조연출(명성황후)을 맡았다. 「우리시대의 연극」 개막작인 「사천일의 밤」(박상현 작·연출)은 12·12로 삶이 파괴된 불행한 여인을 조명한다. 79년 12·12때 신군부세력에 맞서다 숨진 김오랑중령의 부인 백영옥씨(이영숙 분)의 삶과 죽음을 그렸다. 제목은 남편의 의로운 죽음 이후 그가 이승에서 보낸 4,000일의 삶을 가리킨다. 남편이 그립고, 의도치 않았던 스캔들이 두렵고, 91년 12·12주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외압이 힘겨웠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남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자살이냐 실족사냐 타살이냐」의 의문부호를 붙이지만 죽음의 형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박상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12·12의 주역들은 모두 8·15특사로 풀려나는데 역사의 뒤안길에서 기구한 삶을 살았던 한 개인의 불행을 기억할 필요는 없을까』.
조광화(33)씨는 어눌하고 비사교적이다. 고교때의 꿈은 선생님. 윤리교사가 되려고 중앙대 철학과에 들어갔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대신 연극반경험은 삶에 가장 큰 「희열」을 안겨주었고 그는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고통이다. 어른들은 왜 아이들의 세상을 모르는지, 여자들은 왜 매번 오해를 하는지, 남자들은 어떻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지…. 그는 「소통되지 않고 일그러진 관계」를 작품으로 토해내지만 대중과 편히 만난 적은 드물다. 지난 해 많은 상을 받은 「남자충동」은 아주 예외적이었고 뛰어난 작품이었다.
우리시대의 연극 「미친 키스」(조광화 작·연출)는 그의 고백처럼 「내면의 고민을 담은 최종판」이다. 애인 동생 섹스파트너의 세 여자 사이에서 사랑을 갈구하지만 화합하지 못하는 장정(이남희 분)의 파괴적 삶을 그린다. 장면(21개)이 많지만 빠른 템포, 심각한 상황의 희화화등 현대적 감각이 충만하다.
연세대 사학과를 나온 이성열(36)씨는 올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크고 작은 공연과 재공연을 6차례나 했다. 작품성향도 모두 달라 주변에선 그를 실험과 전통을 오가는 연출가라고 부른다. 실험이란 새로운 연극언어일상적 범위를 넘어서는 육성이라든가 신체움직임등을 개척하는 것. 그러나 그는 전통과 실험을 썩 구분하는 것같지도 않고 지금까지 이색적인 정서를 그려내는 데 더 큰 성과를 보였다. 우리시대의 연극 「파티」(윤영선 작 이성열 연출)의 부제로 붙은 「스산한 코미디」같은 것이다. 12월31일 밤 새로 이사온 부부의 집에 이웃들이 파티를 열어 주겠다고 모여든다. 즐거운 파티 속에 긴장은 고조되고 파티는 끝나지 않는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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