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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취미/오미환 문화과학부 기자(여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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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취미/오미환 문화과학부 기자(여기자 칼럼)

입력
1998.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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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후 TV를 보다 기분이 상했다. 오락프로그램이었는데 여자 프로복싱선수와 나이어린 남자 인기가수의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얼굴보호대를 쓰고 여자는 맨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차츰 흥분해서 나중에는 사생결단 낼듯 싸웠다. 관중은 누가 이길까 하는 궁금증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소리치고 웃고, 진행자는 열에 들떠 우스개를 섞어가며 중계를 했다.세상에 볼 게 없어서 남자가 여자 패는 것을 즐기나, 그런 걸 오락이라고 내보내는 방송은 또 무슨 잔혹취미인가. 굶주린 사자와 인간의 사투를 스포츠처럼 즐긴 것은 고대로마의 악덕이었다. 남녀 성대결 복싱경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로 짜고 몰래카메라로 여자연예인을 놀래켜 우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 웃는다든지 성폭행이나 살인장면을 자세히 보여줘 범죄예방인지 범죄충동인지 열심히 권장하는 것도 TV에서는 흔한 일이 됐다.

잔혹취미가 어디 그뿐이랴. 딸같은 어린 소녀를 곁에 앉히고 술을 마시거나 섹스를 즐기는 남자어른들의 풍속은 해괴망칙한 미성년자 학대다. 유흥업소의 미성년자 불법고용이 자주 적발되곤 하지만 그런 데 들락거리며 이른바 「영계」를 찾은 손님이 처벌됐다는 소리는 별로 듣지 못했다.

잔혹취미의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31일과 11월1일 열리는 연어 맨손잡이대회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연어는 수천수만㎞ 먼 바다로부터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짝을 짓고 알을 낳은 뒤 죽는다.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오느라 기진맥진한 연어가 사람 손에 잡혀 죽을 것을 생각하니 불쌍하다. 그것도 생계나 식량을 위함이 아니라 그저 재미로.

약하고 힘없는 것을 아끼고 보살피기는 커녕 은근히 괴롭히거나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사회, 거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폭력에 길들여진다. 짓밟고 올라서라, 힘 센 놈만 산다, 약한 놈은 당해도 싸다­사방에 그런 구호가 펄럭이는 것같다. 민요「한오백년」의 노랫말처럼 「동정심 없어서 못 살겠다」. 날씨는 점점 차가워지는데 생각이 여기 미치니 오슬오슬 한기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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