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파산신청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후지(富士)은행에 당한 희생자 1호』라고 도산 과정을 털어 놓았다.7월 은행측과의 협상에서 9월말 기한인 대출금의 상환 연장에 합의했다. 그런데 은행측이 9월말 갑자기 10월초에 돌아 오는 어음을 막으려고 준비해 둔 당좌예금을 대출금 상환에 돌리겠다고 통보해 왔다. 자금조달 계획이 헝클어지면서 보름새 두차례나 부도가 났고 15일 요코하마(橫浜)지법에 파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었다. 내년 5월 결산에서는 흑자가 예상되던 참이었다.
「신규 대출이 어렵다」는 일본 중소기업의 하소연이 「은행이 강압적으로 대출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비명으로 번진 지 오래이다. 민간조사기관인 데이코쿠(帝國)데이터뱅크의 발표에 따르면 98년도 상반기(4월∼9월) 대출경색으로 인한 중소기업 도산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40% 이상 늘었다.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 더욱 더할 전망이다. 일본 주요 은행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내년 3월말까지 대출잔고를 9월 현재보다 5% 이상 낮출 계획이기 때문이다. 실질 삭감액으로 10조엔에 이르는 규모이다.
이른바 「건전은행」의 자본 증강을 위한 25조엔의 공적자금이 마련됐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은행은 공적자금을 얻어 자본을 늘리기보다는 자산을 압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견디다 못해 일본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관방장관은 25일 악질적인 대출 압축에 대해서는 은행 명단을 공개하고 정부 위탁업무 중지 등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금융감독청도 26일 주요 18개 은행에 대출계획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1주 단위로 확인·지도하겠다고 밝혔다.
신용경색이라는 마물(魔物)과의 싸움이 본격화한 셈이지만 승리를 점치기는 어렵다. 은행도 살자는 발버둥인 만큼 칼만 휘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적절한 유인책은 없을까. 바다 건너 두 나라가 똑같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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