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구조개혁 없이 우리경제가 IMF체제의 극복이나 산업의 경쟁력 복원을 기대하기 어려움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5대그룹이 최근 수정까지 해가며 채권은행에 제시한 재무구조개선 계획에도 재벌의 진정한 변신 노력은 엿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방만한 계열사 수를 30∼40%나 줄이고 핵심사업 중심으로 재편, 주력화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으나 막상 그 내용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다.정리대상에는 있으나마나한 소규모 기업들이 대부분이고 예컨대 현대그룹의 경우만도 없애겠다는 20개사를 합쳐봐야 현대전자 1개기업 규모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과거 선단(船團)경영식 사고의 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채 스스로 문어발을 과감히 잘라내어 과잉·중복투자를 해소하고 방만한 차입경영구조를 청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남기겠다는 기업이 수십개로 오히려 더많아 「까치집」재벌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재벌의 사업구조개혁이란게 눈가림이나 겉모양새 갖추기로 될 일이 아니다. 누구 눈치보거나 정부 압력에 못이겨 억지로 떠밀려 할 성격의 것은 더 더욱 아니다. 혁신적인 경영의 효율화를 통해 기업의 체질과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서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스스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그야말로 생존을 건 자구(自救)노력 없이는 국경조차 허물어진 글로벌시대의 무한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그룹별로 4개사 정도를 퇴출시키는데도 완강하게 저항했던 것과 비교하면 재벌 태도에 적지않은 변화가 있은걸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6∼30대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거치면서 그룹이 사실상 해체되고 단일기업으로까지 변모하는 모습에 비춰 재벌구조조정 역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통념이 그대로 적용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쟁력 우위분야를 확실히 설정하고 그룹의 핵심역량을 집중해도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는다는 보장이 어렵다. 우리나라 산업을 주도하는 상위권 재벌들조차 당면한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문어발 환상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경제가 어디에다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재벌의 구조조정에는 그나마 대출금 출자전환, 이자와 세금감면등 결국 국민세금으로 전가될 정부의 엄청난 재정지원까지 뒤따르게 되어있다. 정부는 재벌의 구조개혁이 결코 겉모양새 갖추기로 끝나게 해서는 안된다. 대기업그룹들도 경쟁력을 갖춰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겨 나갈 수 있는 알찬 자기개혁이 될 수 있도록 진정한 변신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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