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쯤 뉴욕타임스에서였다. 「미국의 다운사이징」이라는 제목으로 10여차례 특집시리즈가 실렸다. 기업의 대대적인 조직축소와 감원이 유발한 미국의 그늘을 입체적으로 다뤘다. 연봉 15만달러의 은행간부가 직장을 잃고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마지막엔 국립공원의 주급 몇백달러짜리 여행안내원이 된 사연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는 직장을 한번 옮길 때마다 연봉이 절반씩 깎여 나가는 고통을 겪었다. 나중엔 부인한테 이혼을 당했고 아이들은 그저 「경제력이 있는 쪽」을 택해 떠났으므로 혼자 남았다.한국의 은행원들도 요즘 한창 생아픔을 겪고 있다. 10명중 3명 넘게 직장을 떠나야 한다. 하루하루가 홍역이고 남는 자와 떠나는 자가 부딪치는 현장이란 차라리 누구든지 벗어나고픈 「늪지대」이다. 인사고과에서 D등급이면 무조건 짐을 꾸려야 한다. 부부행원의 고역은 또 어떤가. 남편이 D등급이고 부인은 A등급이다. 이들에겐 선택권을 준다. 대부분 남편을 살리려고 부인이 나간다. 미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아픔의 크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은행원들은 동네북이 돼 있다. 지금의 위기를 얘기할 때면 으레 은행을 지목한다. 은행의 방만한 대출과 부실투자, 부실경영이 지금의 사태를 불렀단다. 「관치금융」, 또 관치금융이 빠진 뒤 정치실세들에 의해 저질러진 조잡한 「정치금융」, 이런 외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은행 탓이란다.
변명할 말은 없다. 하늘에서 오는 비조차 공평치 않다는 것을 지난 여름 눈으로 직접 봤다. 동네북도 좋고 온 나라가 마구 쳐대는 「나라북」이어도 좋다. 다만 경제를 구제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말이지 제 역할, 제 몫을 온전히 해줬으면 하는 단서정도는 달아도 되지 않을까 한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도 자기지위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자기사람 심기, 제사람 챙기기에 몰두한다든가 과단성도 없고 판세를 흐릿하게 읽어 매번 회생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실패하는 것도 맘이 딴데 있어서다. 이런 「현재진행형」 실착이 사라진다면, 그리하여 나라경제가 제대로만 살 수 있다면 나라북이라도 되겠다, 마구 두들겨라. 내 아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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