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사기관 감청남용은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정부부터 의식 대전환을최근 수사기관의 전화감청 남용이 물의를 빚고 있다. 올들어 감청건수가 지난해보다 1.6배가 늘었고 긴급감청의 경우 영장청구 건수의 절반 이상이 기각될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둘러싸고 입장이 뒤바뀐 여야간에 논란이 치열하다.
우리는 언제나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늦게 깨닫는다. 사태가 이렇게 되어서야, 마치 전혀 몰랐던 것처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등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떤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통신의 비밀이나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상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청」이란 이름으로 합법화된 전화도청이 「과학적 수사방법」의 주요 수단으로 애용되어 왔고, 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 행위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어 왔다. 개인의 사적 영역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회는 이미 자유사회가 아니다.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도 가질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법제도의 잘못을 지적하는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 당초 남용이 우려되었던 통신비밀보호법 제8조에 의한 긴급감청제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안기부나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긴급감청이란 이름으로 48시간 동안 감청을 할 수 있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48시간내에 필요한 사실을 알아낸 뒤 사후에 허가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 법원으로서 이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또한 허가를 받지 못해 감청을 중지한 경우, 그 때까지 감청을 통해 수집한 사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법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긴급감청의 요건을 엄격히 하고 사후통제를 강화시키고 법제도적 공백을 메꾸기 위한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수사기관에 의한 도청이나 영리를 위한 사생활 침해가 뿌리깊게 확산되어 온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야 어떻든 실적만 올리면 된다는 수사기관등 권력기관의 편의주의와 흔히 개인의 사생활을 사사로운 것으로 경시하는 비뚤어진 통념이 그것이다
사실 헌법과 형법, 통신비밀보호법등 통신의 비밀이나 사생활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는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제도라도 개인의 사생활을 경시하는 법문화적 풍토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제도가 남용 또는 악용되는 경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청이나 사생활 침해는 그 반사회성에 있어 고문이나 강력범죄 못지않은 중대한 인권유린이자 비열한 범죄라는 사실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긴급감청의 제도적 결함과 실태를 이유로 정치공세를 벌이는 오늘의 야당은 바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던 어제의 여당이었다. 몰래카메라나 개인정보의 유출같은 사생활 침해는 언제라도,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제 사생활 보호 그 자체가 국정의 주요 목표로 정립되어야 한다. 사생활의 보호는 침해를 방지한다는 의미의 소극적 보호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수단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적극적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국가권력과 모든 사적, 사회적 권력들이 국민 앞에 국민 개개인의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그 실천의지를 담은 헌장을 제정하여야 한다. 사생활 보호 수칙을 만들어 학교 교육, 공무원 교육 등 모든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내면화시키는 일도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여러 법령에 분산되어 있는 사생활 보호에 관한 규정들을 정비·통합하여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행사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법적 방어수단을 갖춘 「사생활보호법」을 제정하는 방안, 사생활 보호를 전담하는 의회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수탁자이자 고객인 국민의 사생활을 업신여기는 정부, 무방비상태로 유린되는 사생활 침해를 방치하는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공법학>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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