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탄 썼죠” “박철언 말입니까”/정덕진씨 “洪 검사 당신이 잡기엔 역부족” 진술/홍성애씨 긴급연행 자술서 확보로 朴 의원 출국금지/朴 의원 “나를 잡으려는 3류각본 정치 보복” 기자회견93년 5월 10일 서울지검 11층 특별조사실. 홍준표(洪準杓)검사와 정덕진(鄭德珍)씨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 앉았다. 며칠째 계속되는 마라톤조사.
(홍검사)『90년 청와대 특별세무사찰 때 엄삼탁씨 로비가 실패했는데 누구한테 로비했소. 딸들이 보고싶지 않습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정씨. 『원자탄을 썼습니다』
홍검사의 머리속이 복잡하게 굴러갔다.「청와대를 한방에 잠재울 수 있는 원자탄이라…」. 홍검사는 6공 때 정보기관장을 지낸 S씨를 떠올렸다. 정씨의 대답은 「NO」.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다면 박철언(朴哲彦)이군요』. 당시 사정수석이었던 김영일(金榮馹)씨를 한손에 쥐고 흔들만한 인물이라면 그를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에게 천거한 「6공의 황태자」 박의원 밖에 없다는 생각이 홍검사의 머리를 스쳐지나간 것.
(정덕진) 『…』
긴 터널을 뚫고나온 듯 홍검사의 머리속이 환해졌다.
한참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던 정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홍검사, 엄삼탁은 몰라도 박철언은 쉽게 못잡을거요. 그사람에겐 헌수표와 현금으로 5억원을 주었소. 물증잡기도 어려울 거고 미안하지만 당신이 박의원을 잡기엔 역부족일거요』
(홍검사) 『직접 돈을 주었소』
(정덕진)『아닙니다. 동생 덕일이가 홍여사란 여자를 통해 박의원을 만나 돈을 주었는데 나는 그 여자 이름도 사는 곳도 몰라요. 87년 친구 소개로 부천에서 「뉴프린스」라는 장급 여관을 그 여자에게서 인수한 적이 있는데 나머지는 홍검사가 알아 보시오』
신문을 끝낸뒤 홍검사는 흥분을 삼키며 유창종(柳昌宗·현 의정부지청장)강력부장실로 달려갔다.
『부장님, 「박」이랍니다. 홍여사란 여자를 통해 알았다는데 도대체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부장의 기억. 『홍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리길래 「정덕진이 거래한 호텔이 몇개나 되겠나. 인천지역 호텔 등기부를 싹 뒤져봐」라고 힌트를 주었어요. 홍검사가 무릎을 치고 급히 나가더니 얼마 안있어 싱글거리며 들어오더군요.찾았다는 거였어요』
홍검사가 전한 비화 한토막. 10일 밤 홍검사는 정씨의 「박철언관련 자백」을 고스란히 녹음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1일 아침 녹음기를 틀어보니 아무소리도 녹음돼있지 않았다. 천신만고끝에 얻어낸 자백이 증발해 버린 것. 다시 홍검사 앞에 선 정씨는 언제 자백을 했느냐는 듯 딴소리를 해댔다. 홍검사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홍여인의 계좌를 뒤졌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다음날 다시 불려온 정씨에게 홍검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제부터 정공법을 쓰겠소』 홍검사의 눈에 핏발이 섰다. 홍검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정씨가 입을 열었다. 『홍검사, 녹음기를 그냥 놔누고 잠을 자러간 것이 실수였소. 나를 지키던 교도관도 잠이 들더구먼. 나는 자지 않았지. 내가 녹음을 다 지워버렸소』
5월13일 아침. 급파된 수사관들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홍여인을 연행해 왔다. 미스터리에 싸인 홍성애(洪性愛·48)씨. 어려서 피겨스케이팅 선수생활을 했던 홍씨는 피겨연맹임원으로 일하다 75년께 대한체육회 회장을 지낸 김모씨와 만나 아들(15)을 낳았다. 김씨가 작고하자 부천에 있는 모텔과 평창동 집을 물려받은 뒤 탤런트 빰치는 미모와 세련된 매너로 상류사회층과 교분을 쌓았다.
홍씨는 박의원을 어떻게 알았을까. 홍씨의 검찰진술. 『86년 아시안게임 무렵 청담동 P룸살롱 마담과 이태원 Y마담과 어울려 다니다가 어느 양식집에서 박의원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후 한 달정도 지나 박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신라호텔에서 점심을 같이했고 이후 S그룹 L회장, L그룹 J부회장, N교수등과 함께 망년회 파티와 생일파티등 모임을 자주 했어요』
갑작스레 검찰에 불려온 홍씨는 자신이 「태풍의 눈」이 된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홍씨는 『모르겠다』고 버텼다. 마지못해 첫 자술서를 썼지만 핵심내용은 빠져 있었다.『덕일씨의 부탁을 받고 박의원을 집에 초대했지만 덕일씨가 돈을 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날 오후. 정덕진씨가 불려왔다. 새파랗게 질려있는 홍씨를 정씨가 다독거렸다.『홍여사 오랜 만이오. 내가 홍검사에게 모두 이야기 했으니 숨기지 말고 말하세요』
홍씨는 검찰의 파상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3차례의 자술서와 5차례의 조사끝에 쓰여진 홍씨의 최종 검찰진술. 『과일과 차를 들고 방에 들어선 순간 정덕일이 황급히 가방을 닫았는데 가방속에는 수표뭉치가 다발로 고무줄에 묶여 있었어요. 「아차, 못 볼걸 봤구나」고 생각해 황급히 방을 나왔어요. 부엌에 들어가 있다가 대문소리가 『쾅』하고 나서 나가보니 정덕일이 들어오면서 박의원에게 5억원을 주었다고 했어요. 돈을 안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일이 잘 돼 기쁘다고 하더군요』(그러나 홍여인의 진술변화는 몇달후 재판에서 유무죄 공방의 불씨가 된다)
홍검사는 5월15일 극비리에 홍씨를 법원에 데려가「공판전 증인신문」절차를 밟고 판사 앞에서의 증언을 증거로 확보했다. 물론 상황을 묻는 32항의 질문에 홍여인의 대답은 오로지 『예』. 신문은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6공 당시「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의원을 향한 화살이 장전된 것.
이틀 뒤인 5월17일 월요일 아침. 한 조간신문에 박의원의 수뢰혐의 수사사실이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됐다. 수사기밀이 새 나간 것이다. 이미 청와대에도 보고된 후였기 때문에 진원지가 어디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이날 아침 서울 서초구 양재동 박의원 자택. 6시 30분께 박의원의 보좌관인 황태순(黃泰舜)씨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거실에 있던 박의원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놈아들이 또 나를 잡으려고…. 황비서, 빨리 보도자료 내. 홍여인은 만난 적이 있지만 돈관계는 전혀 사실무근이고 필요하면 검찰에서 결백을 밝히겠다고 말야』
18일 의원회관 내 박의원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박의원이 비장한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정씨 형제와 특수관계가 있는 홍씨를 내세워 나를 잡으려는 것은 3류소설 각본치고는 너무 심한 각본입니다. 이번 사건은 패자(敗者)인 나를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정치보복입니다』
이무렵 검찰은 박의원에게 돈을 준 「산증인」 정덕일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피를 말리고 있었다. 박의원측은「정치보복」공세의 강도를 높여갔고, 「돈 준 사람도 못잡았는데 어떻게 뇌물공여 사실이 튀어나왔을까」하는 여론의 의구심도 커져갔다. 자칫 여론의 과녁이 박의원에서 검찰로 옮겨질 판국이었다.
홍검사의 기억.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갔어요. 정덕진씨는 물론 호남출신 선배검사를 통해 덕일씨와 연결을 시도하는 등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종적이 묘연했어요. 몇번 무선전화로 덕일씨와 통화를 시도해 설득하려 했지만 10초를 넘기지 못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광주지검에 근무할 때 발신자 추적으로 국제PJ파 두목을 체포한 사실이「건달세계」에 쫙 퍼져있었다나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덕일씨의 은신처 중 하나는 홍검사의 집이 있는 개포동 주공아파트에도 있었다. 덕일씨는 우연히 주간지에서 홍검사의 집이 몇 동 앞에 있다는 보도를 보고 혼비백산해 36계 줄행랑을 친 적도 있었다.
수사팀은 대검에 박의원의 출국금지를 상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여인의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수사팀이 거세게 반발했다. 홍검사의 이야기. 『수사팀으로서도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생사(生死)」를 건 싸움이었어요.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김두희(金斗喜)법무부장관이 결단을 내렸어요. 박의원의 출국금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비밀코드로 입력됐지요』
『따르르릉 』. 19일 오후 홍검사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덕일씨였다.
홍검사의 최후통첩.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잡히면 그냥두지 않겠소. 협조하면 불구속수사를 내가 책임지고 약속하겠소. 선택은 당신 몫이오』
잠시후 정씨의 굳은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가겠습니다』<이태희 기자>이태희>
◎박철언 수사의 명암/朴 의원 “정치보복 재조명돼야”/문민정부 초기 검찰 ‘朴 의원 잡기 경쟁’ 해석도/홍준표씨 “정덕진쫓다 잡혀” 일축
슬롯머신사건 만큼 「말많고 탈많은」 사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건 자체에 연루된 인물들이 하나같이 거물급인데다 「6공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의원도 그물에 걸렸기 때문이다.
시비는 역시 보복사정 논란에서 출발한다. 박의원의 회한에 찬 설명. 『그 사건은 천인공노할 정치보복 사건이에요. 이제는 원점에서 재조명돼야 합니다. 서슬퍼런 권력의 칼날앞에 살기위해 검찰에 영합했던 사람들도 위증죄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내년 쯤 양심선언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씨가 이 사건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과연 뭘까. 당시 수사팀은 『원자탄을 썼다』는 정덕진씨의 진술을 풀어가다 보니 박의원이 튀어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정황을 살펴보아도 슬롯머신 사건은 처음부터 박의원을 타깃으로 했다기 보다 검찰이 등에 올라 탄 「호랑이」의 발길이 박의원쪽으로 향했던 측면이 강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박의원측은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제기한다.
박의원의 혐의는 6공 당시 정씨의 세무조사를 지켜봤던 문민정부 고위관계자가 제보했고 홍검사가 이를 근거로 정씨를 몰아부쳤다는 것.
그러나 국회의원이 된 홍의원은 외부제보설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소리』라며 『당시 수사팀은 내가 정덕진의 입을 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송종의(宋宗義)당시 서울지검장도 『정덕진은 자물쇠로 이름난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 총회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며 『당시 홍검사가 죽을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문민정부 초기 검찰이 박의원을 「잡기위해」슬롯머신 사건뿐 아니라 전방위로 총을 쏘아 댄 것은 사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박의원 사조직 「월계수회」 비자금 수사. (실록 청와대 (55) 사정의 두얼굴편 참조) 타깃에 정확히 총알을 맞춰 넣은 사람이 홍검사였을 뿐 저격수는 사방에 깔려있었던 것. 당시 특수부 소속이었던 중견 검사의 설명. 『6공때 박철언씨는 5공때의 「3 허(許)씨」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어요. 검찰내에 구축한 인맥도 대단했지요.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특수부 검사들사이에선 「누가 먼저 박철언을 잡아넣는가」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박의원측은 정치보복 주장의 근거로 2가지를 든다. 정씨 형제와 관련없는 박의원을 근거없는 관련자 진술로 엮어넣었다는 것과 정씨의 배후가 민주계라는 것이다. YS진영에 돌아갈 포문을 박의원에게 돌렸다는 것.
박의원의 공격적인 발언.『핵심은 누가 정씨 형제의 배후였고 돈을 받았느냐 아닙니까. 재판기록을 보니 홍검사가 국세청에서 입수한 비밀계좌가 348개나 되더군요. 하지만 검찰은 다 덮었어요. 왜 추적을 포기했는지 검찰은 말이 없어요. 당시 언론에선 홍검사를 이탈리아의 「피에트로」검사로 치켜세웠지만 내가 보기엔 정권에 이용당한 「피에로」검사에 불과해요』
박의원 측근인사의 설명.『이 사건 배후에는 박의원을 치기위한 「민주계 6인방」의 음모가 있다고 정덕일씨가 훗날 인터뷰까지 했어요. 일개 평검사가 아무 배경없이 물증도 없는 박의원을 옭아매려고 덤벼들 수 있겠어요』
그러나 홍의원의 반응은 냉담하다.『수사대상으로 삼은 계좌는 86년부터 90년까지 정씨일가의 비밀계좌 227개였어요. 이들이 위기에 처한 시기였죠. 정씨는 조사당시 「힘있는 곳에 로비를 했다」고 했어요. 청와대의 세무사찰이 이뤄진 6공 때 힘있는 곳이 어디였습니까. 정씨의 예금계좌는 YS정권의 지뢰밭이 아니라 박의원이 활약했던 정권의 지뢰밭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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