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는 마음은 중국인들보다 한국인들이 더욱 더 각별한 것 같다. 달력을 봐도 추석 명절은 빨간 숫자의 연속이다. 추석 연휴가 되면 고속도로는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로 한 바탕 몸살을 앓는다. 추석을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이러한 한국인의 정서 때문에 고향 상하이(上海)를 떠나 멀리 이국 땅에서 외로이 추석을 보내야 하는 처지에 주변으로부터 예상외의 따스한 관심과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추석 전날 저녁, 한국 친구들이 송편과 식혜를 보내왔고, 한 화교 학생은 대만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월병(月餠)을 보내왔다. 사소한 음식일지 모르지만 보내주신 분들의 정성만큼은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또한 추석 연휴중에는 외대 교수들의 초대를 받았다. 사양하였지만 결국엔 그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세 분의 교수님 댁에 초대되어 잊을 수 없는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추석날 오전에는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 유학했던 한 여학생이 한과를 들고 인사왔는데, 그 학생이 중국 유학시절 양아버지로 삼았던 교수가 나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딸을 만난듯 반가웠다. 오후에는 푸단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인천에 살고 있는 김선생이 친히 나를 데리러 와 그의 집에서 추석을 지내게 되었다. 김선생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중국어 교사가 바로 내 아내이기도 해서 두 집안은 한 가족처럼 왕래하며 지내왔는데 그는 귀국후 처음 맞는 추석을 굳이 나와 함께 하려고 했다. 나는 김선생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눈뒤 함께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으며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엔 쇠고기 김치 부침개등을 한 보따리 들려주었다.
추석의 밤이 깊어지자, 나는 둥글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끝없는 상념에 젖어들었다. 「집」이란 개념이 내 가슴속에서 변화한 것을 느꼈다. 집이란 어떠한 장벽도 초월한 것이고, 지역도 초월하고, 한국의 휴전선이나 중국과 대만 해협사이를 초월하며, 국경도 초월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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