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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협상 이끈 4인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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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협상 이끈 4인의 주역

입력
1998.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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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스캔들정국 타개 승부수 성공“이스라엘은 안전을 보장받았고 팔레스타인은 자치의 열망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양측에 아이들과 그 후손들이 원하는 미래를 가질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내달 3일의 중간선거에 이어 16일부터 열리는 르윈스키 스캔들 탄핵청문회를 앞둔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에게 중동평화협상의 타결은 국내외적인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네탄야후와 아라파트를 워싱턴 근교에 불러 들이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함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중재에 앞장섰다. 9일동안 무려 86시간을 투자하며 네번의 중간선거 캠페인과 모금행사 스케줄도 취소할 정도로 매달렸다.

협상 8일째로 접어든 22일에는 애견 버디까지 동원해 회담의 분위기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려 노력했다.

미국의 외교문제 중 최대 난제인 중동평화협상에 승부수를 던진 클린턴. 조만간 중동을 방문해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를 향해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세계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할 계획이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

◎아라파트/영토확보 독립국 실현 디딤돌

“평화일정을 포기하지 않고 폭력과 대결로 역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식들의 늦은 귀가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어머니나 폭발음에 놀라는 이스라엘인들이 없도록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려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탄인 자치정부 수반의 꿈은 한 걸음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68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결성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끈질긴 테러와 무장투쟁을 이끈 그는 이번 회담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협상이 결렬된다면 오슬로평화협정이 만료되는 다음해 5월 자체적으로 독립국가를 선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두고 있었다.

80년대 중동을 방랑하는 생활 끝에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한 그는 93년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하는 오슬로협정을 체결, 당시 협상 파트너인 고(故)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협상에서는 막판까지 걸림돌이던 PLO의 반이스라엘 조항 삭제를 확약함으로써 중동평화 대신 독립국가 건설의 영토를 얻은 셈이다.<박진용 기자>

◎네탄야후/강경노선 벗어나 어려운 선택

“이스라엘과 세계는 이젠 보다 안전해졌다. 링컨 대통령이 말했던 ‘인간의 보다 선한 본성’에 도달했다. 하지만 남은 과제는 쉬운 일이 아니며 잠 못 자는 날도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은 없다」는 반아랍 강경파인 벤야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로서는 팔레스타인에 요르단강 서안을 내주는 평화협상이 매우 결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스라엘 의회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인준하지 않겠다는 위협을 처음부터 제기하고 협상의 실무자인 아리엘 샤론 외무장관은 『아라파트와는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등 그의 입지는 좁기만 했다.

96년 우익 리쿠드당 당수로 시몬 페레스 당시 노동당 총리를 물리치고 총리에 당선된 그의 보수적인 성향도 평화안에 선뜻 동의하는 것을 방해했다.

협상 7일째인 21일 밤 돌연 협상테이블을 걷어차고 돌아가겠다고 짐을 쌌던 그가 파격적인 평화안을 받아들인 직접적인 계기는 팔레스타인의 확고한 안전보장 약속 때문이었다. 그의 숙제는 이제 국내 강경파를 어떻게 다독거리느냐다.<이상원 기자>

◎후세인/암투병 불구 막후서 적극 중재

“지금까지 있었던 폭력과 죽음과 낭비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모두는 우리것 우리민족을 뛰어넘는 땅을 되찾았으며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손들을 위해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임파선암 치료를 받고 있는 중환자이면서도 협상장에 두차례나 직접 참석, 막후 중재에 나섰다.

그는 7월 이후 미국 워싱턴 근교에서 요양을 하며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중재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협상 당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평화의 길을 함께 가자』고 호소했다.

그의 노력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은 협정 조인식에서 『그의 용기와 책임감, 지혜, 솔직하고 단호한 지도력이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치하했다.

그가 중재자로 나선 것은 협상이 답보 상태를 거듭하던 20일 클린턴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과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도덕적 권위가 높은 그에게 구조요청을 했기 때문. 그는 이스라엘에 서안지구를 빼앗기고도 지난해 헤브론지역 이스라엘군 철수 등 중동평화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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