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75년 8월17일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張俊河) 선생이 포천군 이동면에 있는 약사봉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을 근거로 14m 높이의 벼랑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단정하고 사흘만에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추락했다는데 외상이 없고, 오른쪽 귀 뒤쪽에 함몰흔이 있으며, 양쪽 겨드랑이에 잡혀 끌려간듯한 피멍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사인에 의문을 표했다.■장선생이 국회의원 시절 지구당 일을 도왔던 목격자는 『일행 40여명과 떨어져 하산중 벼랑에서 소나무를 붙잡고 바위에 발을 딛는 순간 가지가 휘어지면서 미끄러져 추락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왜 일행과 헤어졌는지, 왜 등산로도 없는 경사 70도의 험한 길을 택했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당시 이런 의문을 다룬 한 신문의 편집기자가 검찰에 불려가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된 일도 있었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사건이 나기 얼마전 장선생 집에 수시로 돌이 날아들었고, 밤 늦게 귀가하던 장선생의 장남이 건장한 청년들에게 테러를 당해 앞니가 모두 부러졌다. 지금 싱가포르에 살고있는 장남은 사건후 사인을 밝히겠다고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다 또 괴청년들에게 테러를 당해 석달이나 입원했다. 유족의 요청으로 주검을 검안했던 의사는 귀 뒤의 함몰부위는 거꾸로 떨어져도 다치기 어려운 「감춰진 급소」라고 말했다.
■장선생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그가 75년 5월부터 『박정권은 게릴라전을 벌여서라도 제거해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했고, 재야세력 결집운동을 시작했던 사실을 들어 암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장선생이 잡지문화 발전에 공헌이 컸다고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키로 했으나 유가족은 이를 거부했다. 훈격이 낮은 것도 기분 상하는 일이겠지만 훈장보다는 사인규명을 바라는 것이 유족의 입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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