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준하(張俊河·1915∼75)씨의 유족이 장씨에 대한 은관문화훈장 추서를 거부키로 한 사례는 정부의 서훈행정에 잘못이 있음을 알게 한다. 당초 문화관광부가 월간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장씨에게 잡지의 날인 11월1일에 추서키로 한 훈장은 금관문화훈장이었으나 행정자치부와의 협의과정에서 훈격(勳格)이 낮아졌다. 서훈대상자의 공적은 담당부처가 가장 잘 안다. 그런데 행정자치부는 장준하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처럼 훈장남발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격을 낮춘 것이다.장씨에게 추서될 훈장의 종류는 다음 주에 최종결정되겠지만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원로소설가 황순원(黃順元)씨는 96년10월 은관문화훈장을 거부했다. 황씨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문단에서는 금관문화훈장 수훈자로 내정된 시인과 황씨의 업적이 비교됐었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이효재(李效再)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대표가 여성지위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자로 선정되자 『5공인사들과 함께 훈장을 받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 수훈대상자에 대한 평가와 배려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더욱이 일부 예술인의 유족들은 당사자가 사망한 뒤에나 추서되는 「지각훈장」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추서할 훈장이라면 왜 살아서는 주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이다. 장씨에 대한 추서도 사망후 23년만이다.
훈장은 국가가 개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다. 그래서 수훈자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서훈행정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훈장수여가 관련부처 협의와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결재까지 거쳐 결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사자나 유족이 거절하는 훈장이라면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일부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거부되는 훈장과, 퇴임하는 전직 장관들에게 줄줄이 수여되는 훈장을 보면서 서훈행정의 공정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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