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중문화 개방방침이 보도된 21일 아침, 지하철에서 남녀 고교생 틈에 끼여 앉게 됐다. 오른쪽의 여고생과 왼쪽의 남학생은 똑같이 이어폰을 꽂고 옆사람도 들릴 만큼 크게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남학생은 일본대중문화에 관한 책을 펴들고 벌거벗은 여성의 사진이 실린 「문신마니아」편을 읽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민망해서라도 책장을 넘길 법한데 그 학생은 별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요즘 10대는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됐다. 일본대중문화 개방이 어른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생활의 일부라는 생각도 들었다.10대는 대중문화의 주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한국진출을 앞둔 일본가요계는 10대가수를 집중발굴한다는 장기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을 정도다. 10대는 대부분 의식과 성향에서 「연예인」이다. 부모들은 딴따라가 될까봐 걱정하며 공부나 하라고 말하지만 춤과 노래는 그들의 생활이며 연예인이 되고 안되는 것은 그 다음문제다.
그들은 2중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가정 안에서의 생활과 일상의 개인생활이 판이하다. 특히 교육현장에서는 교사들과의 체험과 감성의 괴리가 커 세대간 단절이 심하며 그 결과 교육효과를 제대로 거두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 어떻게 하면 덜 즐겁게 만들고, 어떻게 하면 더 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것같다. 학생들이 좋아하고 환영하는 것은 대체로 허용되지 않는다.
문화비전2000위원회는 지난 해 문화의 날인 10월2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1세기를 맞아 주력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창조적 인간을 위한 문화교육을 강조했다. 제시된 방안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학교에 침투한 대중문화를 인정하라는 대목이었다. 학교는 이제 소수문화·엘리트문화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수준을 높여가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비틀스가 영국 고등학교의 대중음악문화가 길러낸 밴드였다고 지적하고, 학교는 작은 국가이며 이 작은 국가는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학교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교육부가 21일 발표한 「새 학교문화 창조를 위한 초중고교 정상화방안」도 제목과 달리 문화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미약하다. 선택교과의 경우 학교가 일방적으로 선택했던 것을 희망에 따라 고르도록 학생선택제로 전환한다지만 기왕에 제시된 교과를 대상으로 한 제한적 선택일 뿐이다. 학생들이 대중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과 문화의 접목이 미약하다. 이번에도 문화부는 개방방침을 발표하면서 교육부와 협의한 바 없다. 대중문화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 대책이나 연구가 없는 판에 일본대중문화의 직접소비자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고려나 정책까지 기대하는 게 무리일 것이다. 대중문화가 발전하려면 자생적인 문화인들이 주체가 되는 문화활동이 활성화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교육 따로, 문화 따로식의 행정을 하고 있다.
이제 학교에서도 대중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이 먼저 알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우선은 문화계인사 특강을 실시하거나 이번에 발표된 산학겸임교사제를 활용하도록 하자. 내년엔 교장임용과 교과서 사용, 학생 선발에 자율권을 갖는 자율학교가 등장한다. 특성화고교와 예·체능계 고교를 대상으로 3년간 시범운영될 자율학교는 국정 또는 검인정 교과서가 아닌 도서를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학교를 중심으로 대중문화교육을 실시하되 일반고교와 실업계고교, 중학교에서도 대중문화교육을 하는 것이 좋겠다. 각국이 교육개혁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대중문화를 가르치는 것도 교육개혁의 주요 내용이 돼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