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풀어도 돌지를 않고 여전히 금융권에서만 맴돌고 있다. 붕괴되는 실물경제기반을 떠받친다는 정부의 경기진작책도 돈이 기업으로 가지 않으니 겉돌 수밖에 없다. 「양동이에 물을 쏟아 부으면 결국 넘쳐서 바닥으로도 흘러 들어갈 것」이란 신용경색해소 기대 역시 먹혀 들지 않고 있다. 통화공급 확대와 재정지출 조기집행으로 돈을 풀고 시장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으로 내렸는데도 극도로 위축된 소비와 투자는 오히려 더 얼어붙고 있다.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조정대책 회의에서도 정부정책과 자금시장 현장이 따로 노는 탁상행정에 대해 대통령의 호된 질책이 따랐다고 한다. 말로는 돈을 푼다고 하면서 은행창구에선 오히려 기존대출금을 회수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달들어 지난 보름동안에만도 은행대출 잔액이 3조원이상 줄었다. 소비자금융지원은 시행 20여일이 지나도록 집행실적이 목표의 7%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지원용으로 한은이 배정한 2조원의 자금조차 72%가 낮잠을 자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새삼스러울게 없고 정부도 그것을 모를리 없다.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기업에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할 은행원은 많지 않다. 구조조정 과정의 신분 불안은 말할 것도 없고, 퇴출은행의 부실대출에 검찰수사까지 동원되어 책임을 묻는 판에 은행원에게만 리스크를 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돈줄은 막힌데다 경제가 언제 좋아질지, 또 구조조정 여파는 어떤 주름살로 다가올지, 기업도 소비자도 한결같이 불확실하고 불안하니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두손들고 뻔하게 예상되는 경제의 수직추락을 방관해서야 되겠는가. 경제 활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의 혈액인 돈부터 돌도록 해야 한다. 경기진작을 위한 보다 단호한 정책의지를 보이고, 은행원의 면책기준을 명확히 하는등 막힌 돈흐름을 뚫는 특단의 조치가 따라야 한다. 「신3저」란 모처럼 찾아온 대외경제여건도 채비를 갖춰야 호기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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