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국정감사 자료 내용을 접한 국민들은 기가 차다못해 숨이 넘어갈 지경일 것이다.정부 산하기관에 다니던 사람은 그만 둘 때 퇴직금으로 최고 5억∼6억원을 받아 챙긴다. 일반 공무원 퇴직금의 2∼3배에 달하는 액수다. 이들 공기업은 또 접대비라는 것을 법정 한도액의 최고 17배까지 넘겨가며 수십억, 수백억원씩을 그야말로 흥청망청 썼다. 한사코 구조조정을 나몰라라 하는 게 이들이다.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 정부 각 부처가 부실공사나 잘못된 정책으로 국고에 끼친 손실액이 자그마치 3,200억원이다. 감사원이 밝혀낸 액수다. 거꾸로 국민의 혈세로 짠 지난해 예산중 쓰지 않은 돈이 2조2,500억원이나 된다. 예산을 절약했으니 잘 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돈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예산편성을 잘 했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세입결산 결과 아예 세금 징수를 포기한 돈, 이른바 불납결손액이 무려 2조9,000억원이고, 미처 못받은 미수납액이 5조3,000억원이나 됐다. 봉급에서 세금이 원천징수되는 샐러리맨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비슷한 얘기로 지난 20개월간 세무공무원들이 실수든, 고의든간에 부당하게 깎아 준 세금액이 6,000억원에 이른다. 국세청이 자체조사로 밝혀낸 액수다.
현재 부가세가 면제되고 있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건축사 기술사 등에 과세할 경우 세수효과가 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16개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상태가 안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러면 빚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24조5,000억원이다.
등장하는 돈의 단위가 수천억원대는 보통이고, 조(兆)대를 쉽게 넘는다. 그러니 국민들로서는 이 나라가 IMF 사태를 맞을만 하다고 탄식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국정감사라는 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엄청난 사실들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맞다. 그래서 공무원, 정부 산하기관 간부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바로 국정감사다. 심지어 1년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바로 국정감사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는 국회의원들이 몇차례씩 열린 임시국회마다 헛바퀴를 돌려가며 놀았기때문에 걸러질 일들이 없었고, 그런만큼 공무원들이 더 긴장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지금 일부 의원들이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의도적으로 왜곡 해석, 억지로 문제를 만든다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국감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왜곡과 억지, 뻥튀기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사라져야 할 구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사후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번에 의원들이 내놓은 국감자료중에도 해마다 되풀이 지적되는 내용들이 많다. 몇번씩 혼이 나고도 고치지 않는 공무원들의 배짱도 대단하지만 의원들도 각성을 해야 한다. 엄청난 일을 폭로하고, 소리쳐 지적해도, 그것으로 그만이면 국정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끝까지 관련 부처, 관계 공무원을 독려하고 질책해 고쳐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전초전이었고 내일(23일)부터 20일간 열리는 국감장이 진짜 의원들의 경연장이 될 것이다. 정치인이야 인기가 생명이고, 그래서 경쟁하는 것을 나무랄 일이 절대 아니다. 대신 점수는 내년에 매기자. 어떤 의원이 어떤 문제를 지적했고, 그것이 어떻게 고쳐지고, 바로잡아졌는 지를 1년후 내년 정기국회에서 꼼꼼히 챙겨보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