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두려워하던 선조들 슬기 한눈에/유네스코 遺産등록 1돌 맞아/실록원본 등 96종 전시「세종 12년(1430)년 3월5일부터 8월10일까지 공법(貢法·새로운 토지세법)의 시행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정부관리와 각도의 수령, 일반 백성등 조사대상자 17만2,806명의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 9만8,657명, 반대 7만4,149명으로 나타났다」「전 공조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국왕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馴象·코끼리)을 바치므로 3군부(三軍府)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 보고, 그 꼴의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전자는 조선왕조실록중 세종실록에 나오는 기사이다. 세종은 여론조사에 만족하지 않고 10년간의 시험기간을 통해 새로운 법의 부작용을 검토한 뒤 비로소 전국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후자는 태종실록의 기사. 이 「신기한」 짐승은 엄청난 사료를 먹어치우고 급기야 사람까지 죽여 전라도 해도(海島)에 「유배」당한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1,707권 1,188책·국보 151호)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왕의 실정(失政)과 선정(善政)은 물론 시대별로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법률 통신 종교등 모든 기록을 오롯이 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선조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철두철미한 기록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서울대 규장각(관장 이상택·李相澤 교수)은 21∼31일 규장각 제1·2전시실에서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록(97년 10월1일) 기념 「조선왕조실록과 기록문화」특별전시회를 연다. 실록 원본 21종과 관련 자료 등 모두 96종이 전시된다.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정은 엄정했다. 왕의 사후에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재위 당시의 역사를 기록했다. 각각의 왕에 대한 실록은 춘추관의 시정기(時政記), 사관들의 사초(史草), 승정원(承政院)일기등 공식기록과 개인문집등이 바탕이 된다. 재위중인 왕도 선대왕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없게 해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기록의 진실성을 확보했다. 영조때부터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술한 사료 일성록(日省錄)중 정조시대의 기록인 제225책∼650책은 631군데의 기록이 삭제돼 있다. 순조때 수렴청정을 하던 순원왕후 일파가 자신들이 옹립한 철종의 왕통에 불리한 내용을 삭제한 것인데 그 내용도 정조실록에는 가감없이 기록돼 있다.
규장각의 한 관계자는 『조선시대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군데에 기록할 정도로 철저한 역사기술체제를 갖고 있었다』며 『대통령마다 임기가 끝나면 자신의 부끄러운 「역사」를 싸들고 「귀가」해 파기하는 오늘날의 우리 역사인식과는 너무나도 달랐다』고 말했다.<김철훈 기자>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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